[완주신문]완주군 만경강은 동상면 밤샘에서 발원해 동상호를 이루고 대아댐에서 잠시 머물다 안수산 아래 고산천을 굽이돌아 용진과 봉동 들녘을 가르면서 유유히 흘러 삼례읍 비비정에서 붉은 노을에 물들며 서해로 흘러간다.

 

전통 농업문화유산 생강으로 잘 알려진 봉동읍에는 오래전부터 봉동의 어머니 산으로 불려지는 봉실산이 있다.

 

필자가 완주군의 관방 통신 유적을 수년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느낀 중요한 한가지는 봉동의 봉실산을 기점으로 서남부로 넓게 펼쳐진 완주 평야가 서서히 끝이 나고 동북면으로 갈수록 험준한 산악 지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또한 동북면에 산이 높고 험하다보니 산성과 봉화대같은 관방 통신 관련 유적이 많고 계곡에서는 제철이나 자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례 비비정 옆에는 삼례토성이 있어서 만경강을 거슬러 오는 모든 것을 지키는 관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은 토성이 없어져 무심코 흐르는 강물만이 옛 성터의 흔적을 기억할 뿐이다.

 

둔산리 산업단지 내에는 그리 높진 않지만 배매산성이 있어서 봉실산성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 익산시와 완주군의 경계에 위치한 봉동 제내리 뒷산 진천 송씨 종중산에는 학현산성이 있다. 하지만 성터는 거의 무너지고 성돌은 무분별하게 나뒹굴고 있다.

 

 

완주와 여산의 경계를 시작으로 비봉면의 천호산성과 화산면 상호마을 성태산성과 말목재를 넘는 까치봉에 봉화대가 있어 고성산성을 바라보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금만정맥이 가로지르는 운주면 말골재 위 장재봉과 천등산옆 내촌 마을 뒷산 시루봉에는 고대 가야국의 봉화대가 있어서 운주면에서 논산시 양촌으로 가는 길목을 지켰다. 대둔산과 천등산을 사이에 두고 옥계동에는 많은 제철 유적이 발견 되고 있어 봉화대와 제철유적은 한몸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운주면 산북리 신복마을 뒷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신복봉화대가 돌무더기로 남아 있다.

 

충남 진산 천태산 봉화불은 신복봉화대와 탄현산성과 봉화대를 거쳐 후백제 견훤왕이 넘었다는 용계재 위 불명산 화암봉화대를 지나 신흥계곡 써래봉 위 선녀남봉 시우동 봉화대에 다다른다.

 

시우동 봉화대와 봉수대산 봉오재 위 육판동 봉화대와 죽림봉화대 그리고 구재마을 뒷산 신선봉 선인봉화대는 신흥계곡 불당골과 불목골, 시우동 제철 단지를 지키며 702 고지와 왕사봉을 거쳐 진안군 태평 봉화대와 연락을 취했다.

 

써래봉 아래 신흥계곡과 시우동은 완주에서 유일하게 제철 유적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필자는 작년 가을 전북도의회 의장과 관계자 몇몇이서 신흥계곡 불당골 제철지와 자기터를 답사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전북도의장은 제철단지 주변으로 산성과 봉화대와 함께 완주 고대 역사・문화 유적단지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천호수를 주변으로 성가마골의 성산석성과 고성산성 그리고 수락봉화대 질마재산성과 만수동산성이 사면팔방 그물처럼 촘촘이 자리하고 있어 주변 어떤 산에 올라서 보더라도 유사시를 준비하고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대아호수를 주변으로 봉림산의 기린봉화대와 안남마을 각시봉 봉화대가 있어 고산 안수산 봉화대와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백현산성과 신덕산성과는 서로 지척이다.

 

운암산 관봉 봉화대에서 보면 대아호를 주변으로 산성동산성과 소향리산성이 호수를 감싸고 있다. 대아 호수가 없을 때는 계곡물이 성 아래로 흘러 성을 감싸는 해자의 역할을 저절로 하였을 것이다.

 

운암산에 흐르는 정기는 동상면 구수마을 장군봉 옆 성태산성과 연결된다. 성태산성은 진안군과 경계를 이룬다. 성태산성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없지만 성의 축조 방식이나 성돌의 크기로 봐서 비봉 천호산성과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볼 수 있다.

 

이렇듯이 완주 동북면은 수많은 산성과 봉화대 제철 유적으로 이루어진 단일 지역 전국 최대의 밀집도를 자랑하고 있다.

 

필자가 안남마을 각시봉 봉화대를 시작으로 완주 동북면의 관방 통신 유적을 오르고 또 올라가며 변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유적이 유실되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나름대로 해 보았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세에 잘 전해 줄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밥상을 차려 주어도 먹지 않겠다면 어쩌겠는가. 귀한 보물을 내 손에 쥐고도 모른다면 어디에서 찾을까.

 

이제는 문화의 시대가 열린다. 앞으로는 역사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지자체가 발전하며 앞서 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완주 동북면은 고대 산성, 봉화대, 제철 유적의 보고(寶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