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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완주 이강오 교수 발자취 찿아서

[완주신문]필자가 완주에서 (故)이강오(1920~1996) 전북대 철학과 교수의 발자취를 우연이 만난 것은 몇번이 있다.

 

한번은 완주의 명산으로 알려진 대둔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일주일에 무려 두세번씩 새벽에 올랐다가 아침에 내려오기를 반복하면서 매달릴 때로 기억한다.

 

이치에서 출발하여 생애대까지 올라 칠선녀봉 등 주변을 기록하고 내려와 우연이 이치 전적지를 둘러보면서 전적지 비문을 읽을 때다.

 

비석은 1993년 12월에 건립되었는데 이 교수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장으로서 활동하며 임진왜란 이치에서의 긴박했던 전투의 순간을 글로써 알리고 잘 기록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옛 학창시절 스승의 발자취를 보개된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뿌듯하고 떨리는 순간인가.

 

또한 글씨는 이동구 전 완주군수가 썼는데 완주군민들은 세필을 잘 썼던 분으로 기억한다.

 

또 한번은 비봉면 요덕사 홍련암을 다녀 오다가 비봉공원에 있는 일문구의사 사적비를 살펴 보면서다. 

일문구의사는 일제시대 의병규합과 군자금 모금 등으로 비밀리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군으로서 고흥유씨 한 가문에서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비문에서 이 교수는 일문구의사에 대한 여러 빛나는 업적을 세밀하게 기록하면서 후손들이 그 뜻을 잘 받들어 본받고 길이 빛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 교수는 전북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불명산 깊은 곳에 감추어진 천년명찰 화암사를 세상에 제일 처음 알린 것도 이 교수라고 한다.

 

“화암사 가는 길이 비포장 도로일 때 경천에서 버스도 드물어 터벅터벅 걸어서 함께 답사를 다녔다”고 이영승교장(전 가천초 교사)는 그때를 회고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교수는 금마출신으로 철학자이자 향토사학자며 전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전북대 박물관장도 역임했으며, 전북향토문화연구소를 건립하여 전북의 역사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신흥종교의 대가로 ‘한국 신흥 종교 총람’을 저술하여 13계통 340단체로 분류하고 있다.

 

전북대학교에서는 2018년도에 심천학당을 건립하여 이 교수의 업적을 기리며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는데 돌아가신 것에 비해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생각이 되지만 한편 마음 뿌듯하다.

 

필자는 대학시절 이 교수에게서 한국철학을 배웠는데 그때 그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 간다.

 

철학과 명예교수로서 강의가 있는 날 자전거를 타고 오시면 인문대학 앞에서 음료수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병석의 교수님과 함께 마지막까지 자료정리를 하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는 전북 불교 대학 이창구 학장은 그때를 회고하며 말끝을 흐린다.

 

완주를 돌아보면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교수의 발자취가 더 많이 있으리라 본다.

 

필자는 이 교수의 흔적을 따라 완주 답사를 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기획해 본적도 있다.

 

평생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기록하며 불꽃처럼 살다간 철학자의 인생역정을 찿아 나서는 길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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