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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정체성 찾기4]신흥계곡 ‘야철지’

가야 철 생산기지 역할 확인돼
‘철의 왕국’ 영남에서 전북으로
한반도 금속문화 태동지 완주군

[완주신문]고산면에서 안남사진갤러리를 운영하는 황재남 작가는 최근 경천면 신흥계곡에서 가야유적으로 추정되는 야철지(冶鐵址)를 발견했다. 황 작가는 서래봉 촬영을 위해 산을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 군산대학교 가야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평소 산성과 봉수대 등 유적을 주의 깊게 살펴오고 있었다.

 

야철지는 철을 생산하고 버리는 모든 작업공정을 포함한 제철유적을 말한다. 제철로, 제련로, 단야로, 대장간, 풀무, 야적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에 따르면 변한과 진한은 철을 생산하고 교역했다. 삼한시대 이후 변한은 가야로, 진한은 신라가 됐다는 게 일반적인 설이다.

 

 

■ 철 생산기지 역할 확인
전북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되며, 중국의 제철기술이 한반도 내 육로를 통한 전파가 아닌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학설이 힘을 얻고 있다.

 

더구나 완주군은 지난 7월 가야사 연구 사업을 통해 철 생산기지 역할을 확인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까지 완주군은 가야문화 유적 43개소에 대한 조사연구를 추진해 체계적인 기초자료를 구축했다.

 

가야문화는 경상도 지역에 한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전북지역에서 가야시대의 유적유물이 발견됐으며, 특히 경남, 경북, 전남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봉수와 제철유적이 확인돼 큰 관심을 받았다.

 

완주군에는 가야유적이 총 54개소(봉수10, 산성9, 제철유적35)가 있으며, 43개소에 대한 조사를 추진했다.

 

 

■ 산성과 봉수 존재 의미
이 때문에 황재남 작가의 이번 발견은 매우 의미가 크다.

 

황재남 작가는 “완주에서 산성과 봉수 등이 많이 발견돼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의문이었는데, 만약 이곳이 당시 하이테크놀로지인 철기 생산의 중심지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황 작가의 추측을 40여년간 가야사를 연구해온 권위자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장이 인정해줬다.

 

곽장근 소장은 “대단한 발견이고, 더 발굴 조사를 해봐야 하지만 분포양상을 봤을 때 가야의 대규모 제철유적지로 보인다”며, “이곳을 시작으로 조사할 경우 인근에서 관련 유적이 더 발견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곽 소장은 인근 산성과 봉수에 대해서도 “봉화대, 산성, 제철유적은 한 덩어리”라며, “당시 국력의 원천은 ‘철’이었기에 산성과 봉수는 이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관련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곽장근 소장에 따르면 기원전 2세기인 2200년 전 중국 제나라 황제 전횡이 한나라에 밀려 바다 건너 섬으로 망명을 갔다고 기록됐다. 그리고 전횡은 오늘날의 군산 어청도에 정착했고 이때 철기유물과 제철기술을 가져왔다.

 

어청도에 정착한 세력이 100년에 걸쳐 현재 전북혁신도시 지역으로 넘어왔고, 풍부한 철산지를 찾아 이동했다. 신흥계곡 야철지가 그중 하나라는 것.

 

 

■ ‘철의 왕국’ 중심 전북으로
완주·장수·진안·무주·남원·임실·순창군에서 발굴된 가야계 유적과 유물을 통합해 부르는 명칭은 ‘전북 가야’다.

 

특히 4~5년 전부터 장수지역에서 175개소에 달하는 제철유적이 발견됐다. 일대가 당시 최고 수준의 주조기술을 갖춘 철의 테크노밸리이었다.

 

반면, 영남권에서는 제철유적이 거의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변방으로 취급받던 전북 가야사를 재평가할 기회를 맞았고, ‘철의 왕국’ 가야의 중심이 영남에서 전북으로 바뀔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고대국가에서 국력의 척도라 일컬어지는 ‘철’을 만든 제철유적이 완주지역에 35개소나 존재하는 것은, ‘철의 왕국’이라 불리우던 가야시대에 완주지역이 최신의 기술력으로 철 생산지역의 역할을 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완주군은 최근 조사를 통해 제철유적 내 슬래그(철을 만들 때 생기는 찌꺼기)와 노벽편(금속 제련용 가마 잔해) 등의 실증자료 276점을 확보했으며,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신규 제철유적 2개소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에 박성일 완주군수는 “완주지역에 철을 충분히 확보하고 제작기술이 월등히 발달한 선진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지속적인 조사연구를 통해 가야문화를 재조명함으로써 ‘한반도 금속문화 태동지 완주’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겠다”고 밝힌바 있다.

 

 

■ 한반도 최고 테크노밸리
2000년대 들어 전북혁신도시 일대에서 기원전 2세기 전후 청동기와 철기들이 잇따라 발굴됐다. 완주는 한반도에서 가장 발달된 청동기와 철기를 가진 집단이 모여 살던 선진지역이었다.

 

전북혁신도시 일대는 완만한 구릉과 구릉 사이의 충적지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만경강과 가까워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이 일대에서는 선사시대 이래 끊임없이 생활·문화 활동이 이뤄졌으며, 청동기·초기철기 시대에 한반도 최고의 테크노밸리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가야 국방・경제 중심지 ‘완주’
곽장근 소장은 “운주와 경천뿐만 아니라 고산, 비봉, 화산, 동상 모두 철산지”라며, “이 지역은 요즘 말로 최첨단 산업단지와 같다”고 밝혔다.

 

이어 “가야도 마한과 백제처럼 국가차원의 연구 지원이 되면 묻힌 역사가 세상에 드러날 것”이라며, “마침 현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가 포함돼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곽 소장은 “특히 완주군은 ‘아이언밸리’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유적이 있다”며, “당시 이 지역은 가야의 국방과 경제 중심지로 볼 수 있으며, 완주의 자긍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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