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겨울은 단단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봄을 대비했다. 예년에 비해 매서운 강추위를 뽐내기도 했던 터라 나름 여유도 있었다. 매년 겨울에도 푸름을 유지하며 언제나 기세등등했던 대나무 군락지를 여지없이 항복시켜 가는 곳마다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봄은 겨울의 움직임에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 거센 흐름을 아무리 강했던 겨울도 막을 수는 없었다. 제대로 손쓸 겨를도 없이 겨울은 무장해제를 당하고 봄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렇게 찾아온 봄은 꽃으로 계절이 바뀌었음을 전국에 알렸다. 매화, 산수유꽃을 시작으로 봄꽃 향연이 시작되더니 이내 벚꽃이 온 나라를 하얗게 물들였다. 드디어 완연한 봄이 되었음을 선언했다. 완주군도 예외가 아니다. 곳곳에서 화사하게 핀 벚꽃이 겨우내 움츠려 있었던 마음을 다독거려준다. 요즘은 완주군에도 예쁜 벚꽃길이 많아 굳이 어느 한곳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을 하나 선택한다면 구이저수지를 꼽는다. 벚꽃 구경과 함께 구이저수지 둘레길 산책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이저수지 둘레길은 저수지를 한바퀴 순환해서 걷는 코스와 중간에 있는 술테마박물관까지 다녀
[완주신문]인류의 출현부터 현재까지 인류는 긴 시간 동안 역사를 이룩해 왔다. 인류의 역사를 구분하는 대표적 기준점이 ‘문자’이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여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를 선사시대라 하고, 문자를 활용하여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시대를 역사시대라고 한다. 역사시대는 기록을 통하여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 사상 등의 보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의 역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선사시대는 사용된 도구의 재질에 따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 완주에는 초기 철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가 존재한다. 바로 용진읍 상운리유적이다. 상운리유적은 1996년 익산-장수 고속도로 완주 IC를 건설하기 위해 지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의 발굴조사 결과 상운리에서는 점토곽• 목관 116기, 옹관 38기, 석곽 9기, 목관묘 35기, 옹관묘 5기가 확인되었다. 이는 국내에서 발견된 분구묘 중 최대 규모로 정치・사회・문화・기술・이념 등 당시 사회체제가 압축되어 있는 ‘고고학적 아카이브’이다. 고고학적 아카이브인 상
[완주신문]쿠팡이 전국 단위의 혁신적 물류시스템 구축을 위해 완주군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며, 완주군은 지역경제 전반의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쿠팡 등 택배회사의 노동 문제는 전국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쿠팡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총 9명이다. 이에 황희숙 완주노동상담소장을 만나 향후 쿠팡과 관련된 노동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 쿠팡이 완주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 이로 인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떤가?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좋은 일이다. 이는 최종 목표인 주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삶의 질이다. 이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이를 위해 기업유치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데, 정치권과 행정은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지난해 3월 완주공단 노동자대표회의는 완주군수를 만나 기업에 대한 △근로기준법 준수 서약 △임금체불, 불법파견, 중대산업재해 기업 패널티 방안 △공단 내 노동자 후생복지 시설 점검 및 개선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행정의 반응이 시원
[완주신문]몇차례 기온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더니 슬며시 봄이 고개를 내민다. 잘 알겠지만, 가을은 하늘에서 스멀스멀 내려오지만 봄은 언 땅이 풀리면 그 틈새를 비집고 나와 겨울이 떠났음을 알린다. 이 시기가 되면 SNS에서는 연일 봄꽃 소식을 전한다.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꽃들이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꽃에는 복수초, 바람꽃, 노루귀, 얼레지 등이 있다. 완주군에서 이런 꽃들을 볼 수 있는 곳은 경천면 불명산에 있는 화암사이다. 봄꽃을 보기 위해 나선 날, 유난히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봉동, 고산을 지나 경천면 소재지를 거쳐 화암사로 가는 마을길로 들어섰다. 오전 10시가 되었는데 아직도 안개는 꿈쩍하지 않는다. 요동마을 입구에 서 있는 시무나무가 어렴풋이 보인다.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안갯속에 잠긴 몽환적인 분위기도 썩 괜찮아 보인다. 익숙한 것은 편안해서 좋지만 새로운 것은 신선함이 있어 좋다. 요동마을을 지나 화암사 주차장까지 가지 않고, 숲 입구에 있는 연화공주정원부터 걷기로 했다. 봄꽃 구경을 하려면 안개가 걷히는 시간이 필요해서 숲길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연화공주정원에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지만 사람이 많
고조선과 진국(辰國)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한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한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친 이유를 사기에는 “위만은 왕위를 아들에게 전하고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러서는 꾀어 낸 한(漢)나라의 망명인이 더욱 많아졌고, 또한 여전히 천자를 알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가 글을 올려 천자를 알현하고자 하였는데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도록 하였다.”(『사기』권115, 「조선열전」55)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조선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록이 너무 빈약하여 중국의 기록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여러 역사서를 비교해 보면 고조선은 중국의 한나라와 한반도 남부의 '진'이라는 나라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중계무역으로 얻어진 부는 고조선을 강국으로 만들었다. 고조선이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한나라는 고조선을 공격하였다. 1년 동안 한나라의 침입을 버텨낸 고조선은 지도층의 분열로 결국 멸망한다. 고조선의 강역을 요서와 요동,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비정한다. 이유는 이 지역에서 탁자식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이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반도 남부에서는 바둑판식 고인돌과 세형동검이 주로 발견된다
[완주신문]완주의 정체성 혹은 완주의 재발견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 문득 ‘완주의 선사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인류 역사에서 시대를 나누는 기준점은 문자이다.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을 선사시대라 하고, 문자로 역사를 기록한 시대를 역사시대라 한다.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복원한다. 선사시대는 사용한 도구에 따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로 구분하는데 기원전 3500년 무렵부터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완주에서는 구석기 혹은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봉동, 구이 등지에는 많은 고인돌이 남아 있어 완주의 역사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물로 경제력이나 정치력이 있는 지배계층의 무덤이다. 세계에 약 6만개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중 4만개 정도가 우리나라에 있다. 고인돌은 지배계층의 무덤이기에 고인돌 아래에서 간혹 부장품으로 묻은 유물이 발굴되기도 한다. 불행히도 완주의 고인돌은 아직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발견된 부장품이나 성격이 규명된 고인돌은 없다. 완주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고인돌이 봉동읍 용암리에 있다.
[완주신문]겨울에는 눈이 내려야 겨울 맛이 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기후 온난화가 가져온 큰 변화 중의 하나이다. 어릴 적에는 겨울이 되면 거의 매일 아침 눈을 쓸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매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눈이 자주 내렸다는 의미겠다. 낮에는 눈이 그쳤다가 밤새 눈이 내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수북이 쌓여 있곤 했다. 그런 날이면 아침 일찍 서둘러 눈을 치워야 했다. 사람들이 눈을 밟고 다니면 길이 미끄럽게 되기 때문이다. 마당부터 시작해서 마을 안길까지 눈을 쓸어 길을 냈다. 그때는 매일 반복되는 그런 일상이 힘들게 느껴졌는데 눈을 보기 어려운 요즘에는 오히려 그 시절이 그립다. 요즘 겨울철에는 어쩌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바쁘다. 눈이 오면 가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눈이 내렸을 때도 그랬다.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먼저 만경강 설경을 보고 싶었다. 계절마다 변화무쌍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만경강의 눈 덮인 풍경이 궁금했다. 더 많은 것을 볼 요량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주요 포인트에서만 내려서 설경을 보는 것으로 했다. 만경강 설경 감상 시작점은 고산 삼기정(三奇亭)이다. 삼기정
피폐해진 민중 19세기 조선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는 유학 정명론(正名論)의 핵심이다. 정명론(正名論)은 사람이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제대로 하면 정치는 저절로 잘 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결국 신분의 차별, 직업의 귀천, 남녀의 구별 등과 연결되며 차별적인 신분 제도의 옹호로 귀결된다. 성리학을 받드는 조선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었고, 그 신분에 따라 사회활동과 생활이 차별을 받는 사회였다. 신분이 낮으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뜻을 펼칠 기회조차 갖을 수 없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돈으로 족보와 관직을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신분제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조선사회는 세금징수의 기준인 토지제도가 무너지며 삼정(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이 문란해져 빈부 격차, 독점과 특권이 심화되었고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다. 여기에 해안에는 서양의 배가 출몰하며 사회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신분차별 부정 최제우 이때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 학술서적과 과학기술문물, 천주교가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완주신문]완주군도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났다. 비록 코로나19 여파로 다른 뉴스들이 부각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완주군 10대 뉴스를 정리해봤다. 1. 코로나19 마스크 대란(3월 9일자) 코로나19로 인해 완주군 주민들도 마스크를 사기위해 우체국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섰다. 완주군도 타지역과 마찬가지로 마스크 대란을 겪고 있다. 2월 28일부터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판다는 소식에 인파가 대거 몰렸다. 3월 2일 봉동우체국 앞에는 아침 7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봉동우체국에서 판매되는 마스크는 400매로 1인당 5매씩, 가격은 매당 1000원이었다. 이에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마스크는 평균 10분만에 매진됐다. 아울러 경제활동 제약으로 지속돼 오던 지역 경기침제가 가중되고 있으며,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2. 감사원, 고화토 매립장 ‘주의’(3월 23일자) 감사원이 고화토 폐기물매립장에 대해 ‘관련자에게는 주의를 촉구하시기 바란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결과 확인된 주요 문제점은 ▲군관리계획 입안·결정 부적정 ▲고화처리물 매립에 대한 관리․감독업무
[완주신문]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십수년전부터 시골 학교와 교육의 혁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시도를 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 주도로 교육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혁신 교육이 실현된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침 지난 8월에 고산지역 학부모연합으로 이뤄진 고산향교육공동체 주최로 마을교육 아카데미가 열렸고, 그간 교육 혁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이중 이영미 전 숟가락공동육아 대표의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에 이를 정리해 소개한다./<편집자주> 요즘 아이들의 삶은 예전에 비해 더 풍요로워졌지만 어른들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 학교돌봄, 지역아동센터, 다함께 돌봄센터, 학원까지 더 촘촘한 돌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선택할 수 없다. 부모와 학교, 기관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샛길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정해진 시설에서 늦게까지 안전하게 보살펴지면 되고 부모는 늦게까지 더 열심히 마음 편하게 돈을 벌면 될 일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저녁까지 먹고 싶어 하는 아이도, 야근으로 아이와 가족과 나눌 시간을 희
[완주신문]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십수년전부터 시골 학교와 교육의 혁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시도를 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 주도로 교육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혁신 교육이 실현된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침 지난 8월에 고산지역 학부모연합으로 이뤄진 고산향교육공동체 주최로 마을교육 아카데미가 열렸고, 그간 교육 혁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이중 고산향교육공동체 박현정 전 사무국장의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에 이를 정리해 소개한다./<편집자주> 나는 전주에서 나고 자라며 타도시에서 생활해 본적이 없다. 결혼해서 아들과 딸 하나씩 둘을 두었는데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 둔 2006년 쯤 불현 듯 도시를 떠나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아이를 도시에서 키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떠오르곤 했다. 우리나라 교육환경에 대한 흉흉한 소리를 들었던 터라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환경운동단체니 시민사회단체에서 일을 도왔던 나로서는 바로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당하게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큰 길 건너편 도시초등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뭔가 잘못된 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