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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정체성 찾기7]성혈 고인돌

청동기시대 지배계층 무덤
성혈 별자리일 가능성 높아
고대사 체계적인 조사 필요

[완주신문]완주의 정체성 혹은 완주의 재발견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 문득 ‘완주의 선사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인류 역사에서 시대를 나누는 기준점은 문자이다.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을 선사시대라 하고, 문자로 역사를 기록한 시대를 역사시대라 한다.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복원한다. 선사시대는 사용한 도구에 따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로 구분하는데 기원전 3500년 무렵부터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완주에서는 구석기 혹은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봉동, 구이 등지에는 많은 고인돌이 남아 있어 완주의 역사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물로 경제력이나 정치력이 있는 지배계층의 무덤이다. 세계에 약 6만개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중 4만개 정도가 우리나라에 있다. 고인돌은 지배계층의 무덤이기에 고인돌 아래에서 간혹 부장품으로 묻은 유물이 발굴되기도 한다. 불행히도 완주의 고인돌은 아직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발견된 부장품이나 성격이 규명된 고인돌은 없다.

 

 

완주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고인돌이 봉동읍 용암리에 있다. 용암리에 있는 고인돌에서는 성혈이 발견되었는데 성혈은 바위에 패인 구멍을 말한다. 성혈이 새겨진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는데 민간에서는 ‘알 바위’, ‘알 구멍’, ‘바위 구멍’이라 불렀다. 일부에서는 고인돌을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단으로 보고 성혈을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던 흔적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고인돌의 성혈은 별자리임이 밝혀졌다. 구멍이 큰 것은 밝은 별이고 구멍이 작은 것은 어두운 별을 나타낸다. 특히 충북 청원군의 아득이 돌판의 경우에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 작은곰자리, 카시오페이아자리 등이 정확한 자리에 새겨져 있어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성혈이 별자리로 밝혀진 고인돌은 북한을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약 200여개이다.

 

일반적으로 세계 고대 천문학계에서는 개, 뱀, 전갈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 토지 경계비를 별자리의 원형으로 보고 이 지역을 고대 천문학의 발상지라 여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는 바빌로니아 토지 경계비보다 1800년이나 빠른 기원전 3000년경에 만들어졌다. 고대 사회에서의 천문 기록은 당시의 과학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하늘을 관찰하는 전문가 조직이 있어서 하늘의 별자리는 물론 자연현상을 정기적으로 관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토록 오래 전부터 옛사람들이 하늘을 관찰했던 이유는 농사를 짓는 때와 기후를 알기 위해서이다. 옛사람들은 왕이 하늘을 대신해 인간세계를 다스리는 자이며, 바른 정치를 하지 않으면 자연재해를 통해 하늘이 경고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왕은 하늘을 잘 관찰하여 파종시기와 수확시기를 백성에게 알려야 했고, 일식이나 월식 등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백성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자연히 천문학은 정권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황제의 학문이 되었다.

 

이 때문에 완주의 선사시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봉동 용암리 고인돌에서 120여개의 성혈이 확인되었다. 다른 여러 지방에서 고인돌에 새겨진 성혈이 별자리임을 고려한다면 용암리 고인돌의 성혈 역시 별자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인돌의 하부에 대한 정밀 조사와 함께 성혈이 별자리인지 혹은 단순한 장식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완주의 고대사가 규명되어지길 바란다. 그래야 완주의 뿌리인 청동기 역사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으며,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