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요즘 겨울은 예전에 비하면 따뜻해졌다고 하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응달진 곳 얼음이 좀처럼 녹을 줄 모른다. 이런 시기에는 야외 활동을 주저하게 되는데 가벼운 운동으로 기분을 전환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럴 때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는 곳으로는 소양면에 있는 오성한옥마을도 괜찮다. 오성한옥마을은 소양면 소재지에서 송광사를 지나 위봉산성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 고갯길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위봉산성 방향 계곡에 형성된 마을과 좌측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오성제를 끼고 형성된 마을을 합해서 오성한옥마을이라 부른다. 오성마을 이름은 오성제 주변의 오도재(五道峙) 마을과 위봉산성 아래 계곡을 따라 들어선 외성리(外城里)마을이 합해지면서 마을 이름 한자씩을 따서 지었다. 외성리(外城里)의 경우 1675년 위봉산성이 축조되면서 생긴 마을로 1861년 대동여지도에도 外城(외성)으로 표기될 정도로 지명도가 있었던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골목을 따라 오르면 눈에 띄는 것이 한옥 기와집이다. 2012년 완주군에서 오성마을을 한옥 관광자원화 지구로 지정하면서 달라진 모습이다. 마을 주택의 절반 정도가 한옥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가지런히 돌담을 두르고 있는 기와집이
[완주신문]2021년 한해동안 매달 한번씩 완주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글을 썼다. 완주의 정체성을 꼽으라 하면 웅치・이치 전투로 대변되는 국난극복과 동학 농민혁명의 민중항쟁이다. 웅치・이치 전투와 동학 농민혁명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이름 없는 민중이라는 것이다. 2022년은 보통 사람들의 영웅적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처음 소개할 영웅은 임진년(1592년) 풍전등화 앞에 서 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순절을 선택했던 이름 없는 의병들 이야기이다. 왜군은 1592년 4월 명나라를 치러 갈려고 하니 조선 땅을 빌려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요구하며 동래에 상륙하였고, 20일 후에는 한양을 함락하였다. 관군은 연전연패하고 임금은 의주 압록강 변에서 명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어느 때나 전쟁이 터지면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람은 여자와 아이들이다. 지도자들 그 누구도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데 나라를 구하겠다고 죽음의 자리에 선뜻 나선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의병이다. 의병이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의로운 병사를 말한다. 군번도 계급도 없는 민초이다.
[완주신문]2021년을 마무리하는 12월도 숨 가쁘게 시간이 흐른다. 신년 타종식을 앞둔 초를 다투는 카운트다운은 아니지만 한 해를 마감하는 수순에 들어가면서 왠지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고 있는 느낌이다. 잠시 바쁘게 돌아가는 궤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 나선 곳이 비봉면에 있는 천호마을이다. 천호마을을 가기 위해 고산면 어우리에서 비봉면 방향으로 들어섰다. 길 양쪽으로는 산줄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다. 비봉면은 산골짜기에 들어선 마을들로 구성된 지역이라는 지형적인 특징이 있다. 그렇게 3km 정도 가면 비봉면 소재지가 나온다. 소재지를 지나 1km쯤 갔을까 작은 공원이 차를 세운다. 길가에 있는 작은 공원이지만 유난히 멋스러운 비봉공원 표지석에 눈이 간다. 비봉공원이 있는 곳이 천호마을이 있는 내월리이면서 달이실의 초입이다. 달이실은 옛 지명으로 한자로 표기하면 達谷(달곡)이었다. 달이실은 고구려말로 산골짜기라는 의미이다. 실제 천호마을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달이실의 중심이었던 내월마을이 가장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었다. 비봉공원을 지나 3km 안쪽에 천호마을이 있다. 천호마을은 기해박해(己亥迫害, 1839년) 전후해서 주로 충청도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초남이성지는 ‘호남의 사도’라 불리는 복자 유항검의 생가터이다. 유항검은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권상언과 함께 호남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항검의 가족 중 8명(유항검, 권신희, 유중철, 이순이, 유문석, 유관검, 이육희, 유중성)이 순교하였고, 이중 5명(유항검, 유중철, 이순이, 유문석, 유중성)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시복이란 복자로 인정되었다는 뜻으로 성인이 되기 전 단계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이 되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먼저 청원인이 대상자를 성인으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한다. 신청서가 접수된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호칭과 함께 가경자라고 부른다. 이후 심사를 거쳐 교황의 권한으로 복자가 되고 시성 심사를 거쳐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복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3인의 성인이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을 비롯한 124위의 복자가 있다. 성인은 전세계가톨릭 교회에서 축일로 기념하고 복자는 지역의 교구, 단체 등에서 축일을 기념한다. 초남이성지는 천
[완주신문]마을 골목에는 지나온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다. 그렇기 때문에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 마을 특징을 이해하게 된다. 삼례 하리 구와리 유리마을에 관해서 알아보기 위해 걷기 좋은 날 사부작사부작 여유를 가지고 걸어보았다. 마을 골목 답사는 하리 용전마을에 있는 하리교회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용전마을 남쪽으로 만경강 제방이 있어 물이 그쪽으로 흐르지만, 예전에는 만경강 물길이 두 개로 나누어져 하리를 남북으로 감싸고 흘렀다. 당시에 하리는 강으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남쪽으로 흐르는 물을 앞내라고 부르고, 북쪽으로 지나는 물길을 뒷내라고 불렀다. 하중도에서는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잘 자라는데 하리교회 옆에도 수령이 300년 된 버드나무 노거수가 있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위풍이 당당하다. 섬의 흔적은 대부분 지워졌지만 버드나무만큼은 그대로 남아 마을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버드나무 노거수 앞에는 임광호 전도사 순교자 기념비가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과의 갈등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기념비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버드나무 노거수를 뒤로하고 구와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얼마쯤 지나면
[완주신문]헌법 제1조 1항에 정의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말하는 민주공화국은 ‘민주정’과 ‘공화정’을 함께 추구한다는 선언이다. 민주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며, 공화정은 나라의 통치를 왕이 아니라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에서 공화정에 대한 유래는 중국의 역사서 <사기>의 ‘반란으로 임금이 없는 상태에서 제후들의 추대를 받은 사람이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다’라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제왕이 다스리던 중국에서도 국민에게 주권을 위임받은 사람이 나라를 다스린 적이 있다니 놀랍다. 이처럼 민주 공화정의 핵심은 주권이 백성에게 있으며, 왕이 아닌 백성이 선출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세계사에서 청교도 혁명으로 잉글랜드의 군주제를 폐지한 올리버 크롬웰을 최초의 공화주의자라 칭한다. 그러나 크롬웰보다 60년이나 앞서서 공화제를 주장했던 인물이 완주에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급진적 사상 완주군 상관면 월암마을에서 태어난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이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이다. 1567년 21세에 초시에 합격하여 진
[완주신문]아직은 겨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갑자기 한파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식물들 모두가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단풍이 살짝 들 정도이고, 단풍놀이를 하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시기라서 다들 느긋하게 가을을 즐길 태세였으니까.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어보니 바람 끝이 매섭다. 이런 날 산에 오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약속한 일정이라 마음을 다잡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시간이 흐를수록 추위가 수그러드는 분위기이다. 대둔산 주차장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가 꽤 많다. 이런 날씨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을 보면 대둔산은 역시 명산임에 틀림이 없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등산객들이 상가를 지난다. 등산객들이 몰리면서 상가들도 활기를 찾았다. 상가를 지나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온다. 오후 일정을 고려해서 시간을 단축하려면 케이블카를 타야 했다. 역시 승강장에도 많은 사람이 케이블카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 대합실 벽에는 삼선계단 트릭아트가 되어 있어 기다리면서 재미있는 사진 한장씩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케이블카는 평상시에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을 때에는 그 간격이 짧아 기다리는
잃어버린 이름 우주현 이야기 우산정사는 우산에 있는 정사라는 뜻으로 정사는 재실의 역할 뿐만 아니라 문중 자녀들을 교육하는 서당의 역할도 함께 하던 곳이다. 우산정사는 봉동읍 제내리 제촌마을에 있다. 제내리는 방죽 안 마을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고 제촌마을은 방죽마을, 방죽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제내리는 과거 우주현의 중심지였다. 우주현은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우소저현(于召渚縣)으로 통일신라 시대에는 우주현(紆洲縣), 고려 시대에는 우주현(紆州縣)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409년(태종 9) 이후 전주부에 편입되었다. 우(紆)는 <굽을 우> 로 구부러지다, 두르다, 감돌다 등의 의미이고, 주(州)는 <고을 주>로 고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주(紆州)는 고을을 두르다, 혹은 고을을 품에 안고 있다는 의미이다. 봉동의 테크노밸리 일반산업단지와 왕궁, 삼례 일부지역이 바로 우주(紆州)현 이었다. 고려 말까지 우주현은 전주부와 금마군 사이에 있었으며 치소는 익산IC 나가기 전 마지막 주유소 옆에 있는 공항버스 승강장과 주차장이 있던 곳이거나 왕궁면 동용리와 봉동읍 제내리 사이에 있는 학현산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조선 시대 우주현은 우북,
[완주신문]처서가 지나면서 여름의 기운은 확연히 줄어들고 계절은 가을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맑은 날 해가 쨍할 때는 아직 여름이 머뭇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침저녁 날씨는 이미 여름과 멀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이런 날씨는 걷기에 참 좋다. 여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걸을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상관 편백나무 숲이다. 상관 편백나무 숲은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있는 공기마을과 접하고 있다. 전주에서 남원 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상관 IC를 지나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공기마을로 이어진다. 공기마을 가는 길 좌•우측으로는 펜션과 카페가 여럿 보인다. 편백나무 숲이 입소문 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공기마을 입구에는 대형 주차장도 있어 편백나무 숲을 찾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위쪽 편백나무 숲 입구에 있는 편백 숲 쉼터에도 조그만 주차장이 있지만 공기마을을 구경도 할 겸 마을 입구 주차장부터 걷기로 했다. 주차장을 나오면, 느티나무와 팽나무로 이루어진 마을 숲이 눈에 들어온다. 옆으로 길게 늘어선 모습에서 마을의 역사가 느껴진다. 공기마을 숲은 전형적인 수구(水口)막이 숲이다.
봉림사(鳳林寺)를 아십니까? 고산면 삼기리에 후백제시대 절터가 있다. 봉림사는 주민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전해질 뿐 지방지나 사찰지 등 어떤 고문헌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절이었다. 베일에 싸여 있던 봉림사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61년 당시 삼기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이승철 선생님이 5학년 아이들과 향토 연구를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석불 2점과 석조물 2점을 발견해 언론에 제보하면서였다. 이후 1975년 12월 전북대학교 박물관은 전주와 완주 지역의 문화재 조사를 해 『전주·완주지역 문화재조사보고서』를 발간하며 봉림사지에 삼존불, 5층 석탑, 석등이 있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봉림사지에 해체되어 산재하던 삼존불은 삼기초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학교 정원으로 옮겨 교육 자료로 활용하다 1977년 5월 전북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5층 석탑과 석등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시마타니가 소달구지를 이용해 자신의 농장사무실이 있는 옥구군 개정면(현재 발산초등학교)으로 옮겨갔다. 봉림사지가 출처인 또 다른 5층 석탑은 익산시 남중동 이리여고 운동장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석탑은 백제기법의 고려시대의 탑이라는 평가를
[완주신문]여름철에는 사람들이 물을 찾아 많이 떠난다.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서 일까? 아니면 물은 생명체의 근원이라서 고향같이 푸근하게 느껴져서 그럴까? 요즘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옛사람들도 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여름을 보냈다. 완주에는 지금도 정자가 여럿 남아 있는데, 삼기정, 세심정, 비비정이 바로 그런 곳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은 역시 여름 더위에는 최고였을 것이다. 입추가 지나긴 했지만 아직도 한낮의 온도는 30도를 웃돈다. 그래도 입추가 지났다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여름의 막바지 더위를 떨칠 겸 해서 동상면에 있는 운암산(597m)을 찾았다. 운암산 위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대아호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완주군 동상면에 있는 운암산은 대아저수지를 감싸고 있는 산 중의 하나이다. 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구름이 걸쳐있는 바위산이다. 운암산은 1922년 준공된 대아저수지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운암산을 가기 위해 고산면을 지나 동상면 방향으로 오르면 대아저수지 전망대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이 운암산 산행의 시작점이다. 주차장 건너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