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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산책]만경강 겨울연가

[완주신문]겨울에는 눈이 내려야 겨울 맛이 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기후 온난화가 가져온 큰 변화 중의 하나이다. 어릴 적에는 겨울이 되면 거의 매일 아침 눈을 쓸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매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눈이 자주 내렸다는 의미겠다. 낮에는 눈이 그쳤다가 밤새 눈이 내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수북이 쌓여 있곤 했다. 그런 날이면 아침 일찍 서둘러 눈을 치워야 했다. 사람들이 눈을 밟고 다니면 길이 미끄럽게 되기 때문이다. 마당부터 시작해서 마을 안길까지 눈을 쓸어 길을 냈다. 그때는 매일 반복되는 그런 일상이 힘들게 느껴졌는데 눈을 보기 어려운 요즘에는 오히려 그 시절이 그립다.

 

요즘 겨울철에는 어쩌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바쁘다. 눈이 오면 가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눈이 내렸을 때도 그랬다.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먼저 만경강 설경을 보고 싶었다. 계절마다 변화무쌍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만경강의 눈 덮인 풍경이 궁금했다. 더 많은 것을 볼 요량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주요 포인트에서만 내려서 설경을 보는 것으로 했다. 

 

 

만경강 설경 감상 시작점은 고산 삼기정(三奇亭)이다. 삼기정은 고산현감이었던 율헌(栗軒) 최득지가 1439년 세웠다. 삼기(三奇)는 전라관찰사 하연(河演)이 1422년 고산을 방문했을 때 냇물, 돌, 소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삼기리 경관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세 가지가 특별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 이름을 받아 현판에 새겼다. 현재 있는 정자는 1990년 복원한 것이다. 삼기정 주변에 있던 냇물과 소나무는 멀어졌지만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는 여전하다. 부족한 부분을 하얀 눈으로 채워서 그런지 역시 아름다운 풍경이다. 

 

다음 찾아간 곳은 세심정 생태문화공원이다. 세심보에는 역시 물이 가득 찼다. 세심보 너머 보이는 눈 덮인 산이 예쁘다. 세심보 옆에 만들어 놓은 작은 공원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오늘은 조용하다. 키가 큰 미루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뜨거운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좋을 분위기이다. 뒤로 보이는 안수산도 하얗게 변했다.

 

만경강 제방 도로를 따라 천천히 미소시장 방향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설경 위로 봄, 여름, 가을 풍경이 겹쳐져 흘러간다. 겨울 눈 덮인 풍경의 장점은 단순함이다. 강이 품고 있는 많은 것을 버릴 수는 없지만 대신 눈으로 덮을 수 있어 가능하다. 미소시장 앞 남봉교에서 안수산 방향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좋은데 지난 장마 때 무너진 징검다리가 눈에 거슬린다. 미소시장 주차장 옆에 마련된 소싸움 연습장은 한가롭다. 아마 겨울 동안에는 이런 모습이 계속될 것 같다.

 

 

미소시장 앞으로 지나 봉동 방향으로 가는 제방 도로는 무궁화 가로수길이다. 잘 다듬어진 무궁화 가로수가 보기 좋다. 봉동으로 나가기 전에 어우보에서 잠시 멈추었다. 어우보에는 하중도(河中島)와 수초들이 많아 물새들의 놀이터이다. 설경이 고산 방향으로 시원하게 펼쳐졌다. 

 

봉동 입구에 들어서면 상장기공원이 나온다. 노거수가 즐비한 이곳은 눈이 쌓이면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해가 올라오면서 나무 위에 쌓였던 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강 쪽에는 눈 덮인 풍경이 아름답다. 용봉교 아래에서 한가롭게 물놀이하는 물새들이 보기 좋다. 

 

 

제방 산책길을 따라 봉동교 방향으로 걷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갈 길이 바빠 차를 이용해서 봉동 소재지를 통과해 봉동교를 건넜다. 다리를 지나 바로 오른쪽 제방길로 들어섰다. 가을이면 원구만마을까지 코스모스꽃이 너울대는 예쁜 길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봉동 소재지 풍경이 멋지다. 앞으로는 맑은 만경강이 흐르고 뒤쪽으로는 봉실산이 감싸고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의 풍요로운 땅이다.

 

다시 봉동교를 건너 제방 도로를 이용해 찾아간 곳은 신천습지이다. 신천습지에 있는 신천보 주변은 생태 환경이 좋아 겨울 철새들의 낙원이다. 꽤 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놀고 있다. 

 

신천습지를 지나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삼례 비비정이다. 비비정에서 바라보는 만경강 풍경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옛 비비정은 비비낙안으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그 풍경이 사라져 볼 수 없지만 대신 낙조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그 낙조 풍경에 버금갈 정도의 설경이다. 만경철교 위를 달리는 열차카페를 타고 만경강 설경을 감상하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