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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묻는다...“정말 원하는 것을 해도 돼요?”

[완주교육을 말하다7]이영미 전 숟가락공동육아 대표

[완주신문]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십수년전부터 시골 학교와 교육의 혁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시도를 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 주도로 교육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혁신 교육이 실현된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침 지난 8월에 고산지역 학부모연합으로 이뤄진 고산향교육공동체 주최로 마을교육 아카데미가 열렸고, 그간 교육 혁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이중 이영미 전 숟가락공동육아 대표의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에 이를 정리해 소개한다./<편집자주>

 

 

요즘 아이들의 삶은 예전에 비해 더 풍요로워졌지만 어른들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 학교돌봄, 지역아동센터, 다함께 돌봄센터, 학원까지 더 촘촘한 돌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선택할 수 없다. 부모와 학교, 기관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샛길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정해진 시설에서 늦게까지 안전하게 보살펴지면 되고 부모는 늦게까지 더 열심히 마음 편하게 돈을 벌면 될 일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저녁까지 먹고 싶어 하는 아이도, 야근으로 아이와 가족과 나눌 시간을 희생하고 싶은 부모도 없다. 더 촘촘하게 잘 짜인 안전한 돌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숟가락이라는 비빌 언덕
2013년 아이를 낳았다. 우리 마을에는 우리 아이 혼자밖에 없다. 그 전에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마을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가 겹쳐졌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골 환경에 대해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2014년 8월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에서 일하던 나는 ‘공동육아 특강’을 기획했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부모들이 모였다. 처음에는 함께 소풍도 가고, 도서관에도 가고 집집마다 돌아다녔다. 이렇게 아이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 모였는데 어쩌다 보니 부모들도 좋은 친구를 얻었다. 우리는 같은 꿈을 품게 되었고, 2014년 연말 워크숍에서 미래 모습을 상상했다. 서로에게 ‘숟가락만 하나 얹어 놓은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던 우리 모임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숟가락’이 되었다. 서로에게 숟가락 하나 얹을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기로 했다. 

 

2015년 5월에는 완주군의 한 폐교의 일부 공간을 임대했다. 너른 운동장이 있어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았다. 우리는 아이들의 발달 수준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우리는 늘 소비자였다. 책 놀이, 미술놀이, 전래놀이 등 정보는 쏟아졌고, 다양한 전문가들의 좋은 프로그램을 골라 선택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의 관심사에 집중할 뿐 정해진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활동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전문가가, 더 나은 프로그램이 우리를 구원해주리라는 기대는 환상이었다. 아이들은 우리의 일상을 보고 배운다. 어른들의 행복한 일상을 보며 그대로 흉내 내며 자란다. 아이의 성장은 부모와, 지속적으로 만나는 다른 어른들의 성장 위에 덤으로 얻어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후 어른들의 성장과 아이들의 놀이공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을과 사람 속에 있는 놀이터
요즘의 아이들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처지에 있다. 언젠가 중학생을 둔 엄마가 말했다. 가장 큰 고민이 아이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기력이 일상이 된 아이들 사이에서 어른들은 뭔가 보상을 내걸어 꼬시거나 권위로 강제한다. 하고 싶다는 마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해야 할 것만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자기 의지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의 놀이터도 “이렇게 놀아야 해”를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알았다. 위험마저도 허용되는 자유로운 공간,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놀이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는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놀이를 지지하는 어른들 모여라
‘놀이를 지지하는 어른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2018년 7월 아홉 명이 모였다. 유아, 초등, 중등 학부모, 방과후 강사 및 고산풀뿌리교육지원센터 담당자 등이 모였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이유, 방과 후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쏟아냈다. 한 참여자는 “이 모임은 학교, 돌봄센터 등 기관들로부터 자유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혁명적인 모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기대를 털어놓기도 했다. 두번째 모임부터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양한 연령대가 어울릴 수 있는 장, 일방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동아리 모임 방식의 방과 후 프로그램, 아이들의 이동권을 위한 자전거 활성화, 초등 놀이 돌봄 간담회가 필요하다는 등 구체적인 사업들을 구상했다.

 

2018년 가을 우리는 ‘놀이창고 설명회’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놀이돌봄을 위한간담회를 열었다. 드디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많은 자유를, 그런데 어떻게?
아이들은 ‘자유’라는 말에 흥분했고 과격하고 위험한 행동에도 거침이 없었다. 지붕에 올라가고 나무 위에 올라갔다. 불을 피우고, 화덕을 부수기도 했다. 물 호스를 뿌려가며 물놀이를 하다가 물싸움이 되기도 했다. 모래놀이용 냄비들을 망치로 두드려 못쓰게 만들었다. 대나무를 톱으로 잘라 칼싸움을 했다. 장난으로 싸우다가 진짜 싸움이 되어 죽이겠다며 쫓아가기도 했다. 같은 학교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다른 학교 친구들을 놀리거나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모래구덩이에 친구들을 묻기도 했다. 고학년 형들은 자기들이 발견한 아지트에 동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거친 말을 쓰기도 했다. 온갖 악동 짓이 이어졌다. 

 

초기의 이런 상황은 놀이지기들에게 멘붕이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놀이지기 당번인 날 청소만 열심히 했다.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저학년 부모들은 놀이창고를 위험한 곳으로 여겼고 오지 않는 아이들도 생겼다. 이곳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했다. 놀이지기들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더 많은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공언했기에 아이들과 더 크게 부딪혔고, 우리 스스로도 갈등했다. 게다가 놀이지기 간에 서로가 허용하는 자유의 범위가 다 달랐고, 우리는 크고 작은 제한과 규제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가 자칫 우리의 기준으로 ‘생산적이고 예의바른’ 수준만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른인 우리들 스스로도 ‘자유’가 무엇인지 헷갈리고 답답했다. 제한을 두는 순간 ‘자유의 수호자’ 자격을 잃을 것 같아 주저했다.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았고, 다들 속 시원하게 꺼내 놓지 못 했다. 3개월 정도 지나니 아이들도 좀 잠잠해졌다. 아이들은 스스로 억눌린 것을 푸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난 후 아이들은 서서히 질서를 찾아가는 듯했다. 놀이지기들도 갈등하는 부분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서서히 아이들을 이해해가고 놀이창고의 의미도 찾아갔다. 

 

어느 날 아이들 간에 싸움이 났다. 그 싸움을 중재하던 중 한 아이가 “왜 때리면 안 되냐?”며 따져 물었다. 갑작스레 전체회의를 제안했고 다 같이 이야기 해 보기로 했다. 전체회의는 아이들과 어른이 모두 1인 1표의 권리로 참여하는 회의로, 공동의 문제를 제안해 함께 해결하는 절차다. 2019년 5월 첫 회의에서 “욕하게 하자. 때리게 하자”는 제안에서 시작해 급기야는 “놀이창고 문 닫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폐장이라는 갑작스런 제안에 전체회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이들까지 모두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30명 중 20명의 반대로 놀이창고는 문을 닫지 않는 것으로 결정 났다. 그 회의 이후 우리의 결정이 바로 실행될 수도 있다는 것을 따끔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아이들의 제안은 조금 더 신중해졌고, 그 결과는 놀이창고의 규칙이 되었다. 그렇게 점점 주인이 되어갔다.

 

두 번째 전체회의가 열렸을 때, 이번에 아이들은 사뭇 진지했다. 10개도 넘는 안건을 냈다. 간식을 더 달라, 놀이기구를 더 만들어 달라, 종이를 더 사달라 등 적는 란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중 3개를 골랐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안건은 핸드폰 사용이었다. 아이들끼리 논의해 ‘핸드폰 없는 아이도 다 같이 하고, 목요일과 금요일에 30분씩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재밌게도 두주가 지나도 아이들은 핸드폰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몰래 숨어서 했다. 몸이 아파 한동안 오지 못 했던 친구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전체회의에서 핸드폰 게임하기로 했다. 몰래 해야 재밌는데 이제 좀 시시해. 안 할래.”

 

아이들이 휴대폰을 하겠다며 격렬하게 맞선 것에 비해 그 결과가 너무 시시했다.

 

“내 삶의 주인이 되도 돼요?”
놀이창고에서 아이들은 가끔 나를 실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보란 듯이 온갖 짓궂은 장난을 한다. 내가 그 관문을 넘고 나면 아이들은 그제야 마음 놓고 정말 자기에게 이로운 선택들을 해가는 것 같다. ‘진짜 원하는 것, 진심으로 이로운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본 경험이 없었던 아이들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 ‘정말 원하는 것을 해도 돼요? 내 삶에 주인이 되도 돼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