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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잘도 놀아준다’는 한마디에

[완주교육을 말하다6]박현정 고산향 전 사무국장

[완주신문]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십수년전부터 시골 학교와 교육의 혁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시도를 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 주도로 교육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혁신 교육이 실현된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침 지난 8월에 고산지역 학부모연합으로 이뤄진 고산향교육공동체 주최로 마을교육 아카데미가 열렸고, 그간 교육 혁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이중 고산향교육공동체 박현정 전 사무국장의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에 이를 정리해 소개한다./<편집자주>

 

 

나는 전주에서 나고 자라며 타도시에서 생활해 본적이 없다. 결혼해서 아들과 딸 하나씩 둘을 두었는데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 둔 2006년 쯤 불현 듯 도시를 떠나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아이를 도시에서 키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떠오르곤 했다. 우리나라 교육환경에 대한 흉흉한 소리를 들었던 터라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환경운동단체니 시민사회단체에서 일을 도왔던 나로서는 바로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당하게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큰 길 건너편 도시초등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내 노력으로 줄여보리라, 바꿔보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열심히 움직였다. 남들 다 하는 녹색어머니회는 물론이고 각종 봉사와 학급 학부모 임원활동에 전교 학부모 합창단까지, 도울 수 있는 일은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다 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학부모 모임에 나가 촌지를 없애자, 학부모 활동을 고민해보자는 불편한 소리를 하고 다녔다. 그랬더니 어느 때부터인지 서로 힘들어지는 분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이름 석자 딱 쓸 줄 알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로부터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반 친구들이 모두 사서 본다는 문제집을 사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시험을 잘 볼 수 있다고. ‘아! 올 것이 온 것인가!’라며 8살짜리 아들을 설득해 보려고 나름 노력했다. ‘너는 글을 읽을 줄 모르니 문제집을 사는 것이 의미가 없고 시험은 0점을 맞아도 되니 걱정말고 학교에 다녀라. 그리고 정말 맘 편히 시험을 보라’고 말했다. 이래저래 예민하고 타인을 의식하는 성격이었던 아이는 상형문자로라도 시험문제 유형을 외우고 싶었던지, 문제집을 사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희망을 갖고 싶었던지 쉬 물러서지 않았다. 시험기간이 되면 아파트 놀이터에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환경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성질 급한 엄마인 나는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시험과 성적에 상대적으로 덜 치열할 법한 시골로 가서 아이를 그 곳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을 시도했는데, 당시 도시를 떠날 마음이 조금도 없던 남편과 합의가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시골에 그 많다던 빈 집 중 한 곳도 쉽게 얻어지질 않았다.

 

그러던 중 시민단체 야생화모임을 수년 간 같이 하던 지인이 완주군에서 도자기를 굽고 찻집을 해서 가끔 드나들고 했는데, 그 분으로부터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이미 아이들 학령기를 다 보낸 그 부부가 보기에 그 근처 시골학교 선생님들은 참 신기하고 예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옆 논이고, 밭이고, 산이고, 들로 참 잘도 놀아준다고. ‘아이들과 잘도 놀아준다’는 그 한마디에 덜커덕 마음을 정해버렸다.

 

남편과 아이를 수차례 설득해 초등학교 2학년부터 도시에서 시골학교로 통학을 시키는, 당시에는 퍽 유난스러운 일을 실행하게 되었다.

 

좋은 게 있으면 꼭 다른 이들을 꼬여 함께 하기를 즐기던 나는 초등학교까지 만이라도 공부를 미루고 좀 놀려보자는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아이들이 매우 어려서부터 친분이 있던 학부모들을 만나 아이들을 함께 시골학교로 통학을 시키자고 설득 아닌 떼를 썼다. 여러번 모임 끝에 열 가정 정도가 모였고 한 학부모가 차량 등하교까지 맡아주는 형태를 빌어 초등학교 통학이라는 흔치 않은 일을 감행하게 되었다. 10년 정도 지난 요즘에는 이런 일들이 여기저기서 낯설지 않은 일이 돼버렸지만 그 때는 여러 가지 오해도 불러일으키는 유별난 일이었다.

 

그렇게 당시에는 이름나지 않았던,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선생님들이 있던 고산면 삼우초등학교에 큰 아이가 2008년 초등학교 2학년부터 다니게 되면서 마찬가지로 나도 삼우초등학교 학부모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옆에서 보니 삼우초등학교 아이들은 아이들만 바라보고 사랑하는 눈물겨운 선생님들의 에너지를 받으며 자기 속 씨앗을 천천히 야물게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더 들여다보니 시골학교에는 학부모나 지역사회가 함께 맞잡고 가야 할 일 또한 많아 보였다. 비슷한 시기 삼우초에는 다양한 곳에서 해마다 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들어와 아이를 보내는 가정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저학년의 경우 지역주민의 아이들로만 학급을 구성하기 어려워진 시기가 되었지만 그 때는 지역아이들과 이주해 온 아이들이 변화무쌍한 문화 속에 한 해가 다르게 다양한 일들이 생겨나던 시절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삼우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시골, 그것도 조금 더 돌봄이 필요한 시골아이들과 행복한 배움을 실천해 보고자 더 특별한 노력을 해보려던 분들이었는데 나와 같이 도시에서 밀려오거나 도망쳐 오거나 찾아온 아이들이 늘어나자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한 때였다. 나름 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학부모회를 억척스럽게 진행하면서 2~3년 동안 열심히 한다고 했던 학부모들이 있었다. 비슷한 환경인데 무엇인가 더 잘 정착되어 간다고 판단한 선배 학교들에 견학도 다니고 이런 저런 사업도 해보고 회의는 또 얼마나 많이들 했던가! 그랬던 2~3년 동안 삼우초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수많은 인연과 변화를 몸으로 겪으며 각각 애를 참 많이도 썼을 것이다.

 

전주에서 완주로 3년을 통학시키며 시골학교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자 남편과 아이들은 아예 삶의 터전을 시골로 옮기는데 동의하게 되었다. 몇해째 학부모 활동으로 지역민들과 관계를 맺은 덕분에 어느 마을 구 경로당 한 칸을 얻어 무작정 들어와 6개월을 머물게 되었고 이어서 극적으로 터를 얻어 보금자리도 짓고 어엿한 마을 주민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 상상도 못 했던 무시 못 할 부채도 든든히 벗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세월은 쉬지도 않고 흘러서 어느덧 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유치원생이었던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었다. 그 즈음 다시 고민에 빠졌다.

 

‘초등학교까지는 잘 놀렸는데, 중학교는 어쩌지?’  

 

시골중학교에 대한 검증없는 소문에 괜한 불안이 엄습했다. 실제 지역 주민들은 최근 짧게는 십수년, 길게는 수십년간 의례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전주의 중학교로 진학을 위해 상당수 전주지역으로 아이를 내보내거나 온 가족이 주민등록이라도 나가 사는 상황이었다.

 

이에 또 다른 곳을 찾아내야 하나, 대안학교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나 등을 고민했다.

 

고산면에 기존 주민의 자녀만큼이나 이주한 아이들의 학생수가 많아지던 2010년 완주군에서는 각 읍면에 지역이 스스로 장기발전계획을 세우게 했다. 고산면은 그해말 지역발전위원회를 만들었고 다음해인 2011년 그 안에 4개 분과 중 하나로 교육분과를 구성하고 활성화를 위해 실무위원회를 꾸려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 실무위원회에는 고산에 있는 5개 학교 교장선생님과 지역주민이 소수 참여했는데 학부모로서 여기에 합류했다.

 

‘지역장기발전을 위해 지역교육을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어마어마한 일의 시작은 실제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들에게 물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기로 했다. 매주 1회 회의로 시작된 실무회의는 어느 주에는 이틀이 멀다 하고 자정도 잊은 시간까지 만나면서 지역 교육주체 각각의 의견을 모으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로 하고 질문 하나하나까지 의견을 모아갔다. 지역의 다섯 학교인 고산초등학교, 삼우초등학교, 고산중학교, 고산고등학교, 전북푸른학교의 학생 578명, 교사 71명, 학부모 3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밖에도 실무위원들은 지역의 전통을 조사하고 문화를 분석하고 지역기관의 실태를 알아보고 SWOT분석을 하는 등 각각 맡은 과제를 하나씩 해나갔다. 이렇게 지역을 조사하고 지역의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물어 2011년 7월 ‘고산면 공교육의 현실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고산향교육공동체 포럼을 개최했다. 고산면사무소 3층 대강당에 약 300여명의 사람이 모였다. 모든 교장선생님들이 참여해서 학교의 현황과 과제를 소개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발표를 진행했다. 이어 지역의 아이들이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서로 존중하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1차 설문조사 결과를 공유했고 이를 지속적으로 일구기 위해 지역교육공동체의 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포럼 후 8월에 각 학교별 교장, 학생회장, 학부모회장, 운영위원장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설문을 진행했고 다음해부터 진행할 고산향교육공동체 사업계획안 및 예산안을 작성했다. 이어 11월에 학교마다 진행하는 축제를 지역에서 함께 홍보하는 한편, 각 학교의 교사・학생・학부모가 참여하는 고산향 한마당을 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고산향교육공동체가 고산지역 교육주체들에 의해 생겨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