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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정체성 찾기9]땅 속의 역사기록 상운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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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신문]인류의 출현부터 현재까지 인류는 긴 시간 동안 역사를 이룩해 왔다. 인류의 역사를 구분하는 대표적 기준점이 ‘문자’이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여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를 선사시대라 하고, 문자를 활용하여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시대를 역사시대라고 한다. 역사시대는 기록을 통하여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 사상 등의 보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의 역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선사시대는 사용된 도구의 재질에 따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 완주에는 초기 철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가 존재한다. 바로 용진읍 상운리유적이다. 상운리유적은 1996년 익산-장수 고속도로 완주 IC를 건설하기 위해 지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의 발굴조사 결과 상운리에서는 점토곽• 목관 116기, 옹관 38기, 석곽 9기, 목관묘 35기, 옹관묘 5기가 확인되었다. 이는 국내에서 발견된 분구묘 중 최대 규모로 정치・사회・문화・기술・이념 등 당시 사회체제가 압축되어 있는 ‘고고학적 아카이브’이다. 

고고학적 아카이브인 상운리 분구묘에서는 토기류 320여점, 철기류 500여점, 옥류 6000여점 등 약 7000여점의 생활 유구가 조사되었다. 호남지역에서 가장 많은 출토량이며 최초의 초기 철기 시대의 주거 유적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상운리 초기 철기시대의 주거 유적에서는 단야구가 약 20여 세트가 발견되었는데 우리나라 단일 유적에서 출토된 단야구 중 최대 수량이다. 단야구는 망치〔鐵鎚〕, 집게〔鐵鉗〕, 끌〔鐵鑿〕, 줄〔鑢〕, 모루〔鐵砧·鐵床〕등으로 철을  담금질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담금질이란 철에 열을 가해 모루 위에 놓고 집게로 잡은 후 망치로 표면을 두드려 철제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상운리에서 담금질로 만들어진 철제품은 길이가 1m가 넘는 대형의 둥근 고리칼, 철검, 철창, 화살촉, 작은 손칼, 도끼, 낫, 판상철부 등이다. 상운리는 철을 만드는 제련소는 아니지만 철을 가공하는 대단위 공단지역으로 상운리 사람들은 고도의 철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야구와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유물 중 하나는 판상철부(板狀鐵斧, 네모난 쇠도끼)이다. 판상철부는 한쪽 혹은 양쪽 끝에 날을 세운 네모모양으로 철기 제품을 만들기 위한 중간단계의 제품이다. 철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는 집단에서는 판상철부를 수입해 반으로 잘라 도끼로 사용하거나, 도끼를 가로로 잘라 화살촉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魏志東夷傳) 변진 조의 ‘시장에서 중국의 돈과 같이 사용되고 낙랑군과 대방군에 공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덩이쇠는 시장에서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판상철부는 무덤의 바닥에 10의 배수로 깔아주는 매납 풍습에 사용되는 위세품이다.

 

상운리 유적에서 발견된 단야구와 판상철부는 완주가 청동기 시대에 이어 초기 철기시대에도 최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테크노벨리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상운리 유적지는 완주 IC 출입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답사는 물론 교육 환경도 좋은 편은 아니다. 완주에 하루빨리 역사박물관이 만들어져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