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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완주·전주 통합문제에 대한 제언(1)-통합의 실체적 진실

[완주신문]사상 초유의 불법 계엄 내란 사태를 극복하고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한 지 백일을 맞고 있다. 새 정부의 국정 기조에 조응하는 지역발전 전략을 추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우리 전북 도정은 완주·전주 통합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늪에 빠져 있으니 안타깝다.

 

필자는 행정안전부에서 자치분권정책관을 맡아서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업무를 담당했었다.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로서 지난해 1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실무적으로 총괄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완주·전주 통합문제를 살펴보고 완주와 전주의 진정한 상생 협력을 위한 제언을 하려 한다. 세차례의 기고 중 첫 순서로 우선 완주·전주 통합의 실체적 진실을 정리해 본다.

 

완주·전주 통합문제가 전북의 현안이 된 것은 이번이 벌써 네번째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 논의는 1997년을 시작으로 2007년, 2013년 3차례 추진됐으나 완주군민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3년에는 완주군민들의 주민투표까지 갔지만, 반대 55.3%(2만343표), 찬성 44.6%(1만6412표)로 부결됐다.

 

또다시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지사와 전주시장은 완주·전주 통합만이 낙후된 전북 발전의 유일한 해법인양 몰아붙이고 있고, 여기에 맞서 완주군민들은 올여름 극한의 무더위 속에서 생업을 뒤로한 채 ‘통합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뙤약볕 아래 거리로 나선 완주군민들의 땀방울과 절규는 단순한 반대운동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통합 논의가 정말로 지역민을 위한 것인지, 정치인의 성과와 업적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완주의 백년대계를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완주·전주통합의 주체는 그 터전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완주군민이다.

 

그런데 완주·전주 통합을 말하면서 전주-완주가 통합된 이후의 비전과 청사진 하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전북 발전을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고만 한다. 완주군민들에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완주군민 70% 이상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통합 찬성측은 ‘행정 효율성’과 ‘재정 확충’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전주는 도시 기반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고, 완주는 상대적으로 넓은 농촌지역을 관리하는 행정체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체질의 지방정부를 억지로 합치면 중복조직의 통합으로 인한 일시적인 경비 절감은 있을지 몰라도 이를 능가하는 행정의 비효율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한 행정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인구가 밀집된 전주지역에 자원이 집중되고 완주지역의 소외가 불가피하다.

 

재정적인 측면 역시 중앙정부가 주는 ‘통합 인센티브’보다 중앙정부의 교부금과 보조금의 감소로 인한 손실이 더 많다. 통합으로 인해 재정이 확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두 지자체 재정의 합산액보다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산·창원·진해 통합사례, 청주·청원 통합사례 등에서 이미 실증되었다.

 

‘인구 100만 특례시’라는 장밋빛 구호 역시 희망사항일 뿐이다. 2025년 현재 완주군 인구는 10만명이고 전주시 인구는 64만명이다. 합해도 인구 100만에 한참 부족하다. 지방자치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에 담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도 전주시는 인구 50만 특례를 적용받고 있으나,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00만 특례시 지위를 얻은 수원, 고양, 창원 등에서 여전히 특례 확대를 외치고 있으나, 중앙정부나 도에서는 권한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 실제로 지방국토관리청, 지방중소기업청 등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이양하는 지방행정체계 전면 개편의 결단이 아니고는 내어줄 권한도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은 일방적인 완주·전주 통합 강행은 2020년에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주민주권의 원칙’과도 배치된다. 지역주민이 자치권과 정체성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듯이 70%에 이르는 절대 다수 주민이 반대하고 있는 통합을 강행하는 것은 주권자인 주민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지방자치의 대의에도 반하는 것이다.

 

완주는 그저 전주를 둘러싸고 있는 변두리가 아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공동체의 정을 이어온 삶의 공간이다. 통합으로 자치권과 정체성을 잃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억지 통합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협력하면서 상생의 길을 찾는 일이다.

 

완주·전주 통합문제는 지방선거 때마다 도지사와 전주시장 후보들이 들고나오는 나오는 단골 메뉴이자 해묵은 논쟁이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완주·전주 통합을 정치적 성과와 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카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완주-전주 통합이 정치적 계산이 아닌 순수한 지역발전의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다.

 

도지사와 전주시장은 이런 믿음에 화답해야 한다. 여름 내내 무더위와 뙤약볕에서 생업을 뒤로하고 ‘완주-전주 통합 반대’를 외치고 있는 완주군민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진정한 용기와 상처받은 완주군민의 마음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완주와 전주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방안과 전북의 미래 비전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