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최근 전주시는 12개 분야 107개의 상생사업을 제시하며 완주군민에게 통합의 달콤한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약속들이 과연 실현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통합 청사 건립, 버스터미널 설치, 도로 확장, 농업진흥기금, 보건소 확대 등 화려한 계획이 제시되지만 정작 이들 대부분은 완주군의 정체성과 자치권을 축소시키고 전주시 중심의 행정구조를 고착화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특히, 전주시는 통합 이후 일반구 4개 체제를 언급하며 마치 완주가 독립적인 행정 단위로 존속될 것처럼 말하지만 지방자치법 제198조에 따르면 특례시가 되더라도 자치구가 아닌 일반구 설치만이 가능하며, 이는 곧 완주는 이름만 남고 실질적인 정책결정권은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다.
전주시는 마치 통합이 예산 증대와 지역 발전의 전기가 될 것처럼 선전하고 있으나 이는 수치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대표적 사례인 청주시와 비교하면 그 허상이 명확히 드러난다. 2024년 7월 기준으로 청주시 인구는 약 87만 9천여명, 전주시와 완주군의 인구를 합해도 약 73만8천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산은 전주와 완주를 합친 금액이 오히려 청주시보다 1548억원이나 많다. 이 수치는 단순 통합이나 인구 증가가 지방정부 예산 확대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통합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통합 인센티브를 10년간 받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한시적 지원에 불과하며 동시에 사라지는 완주군의 기초자치단체 보통교부세를 감안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재정적으로 손해가 되는 구조다. 통합은 단순히 예산의 총액이 문제가 아니라 그 예산이 누구에게, 어디에, 어떻게 배분되느냐의 문제이며 현실적으로 완주군은 통합 이후 소수 지역으로서 예산 배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전주가 제시한 상생사업 중 산업단지 조성이나 지식산업센터 유치는 마치 완주에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주시의 부족한 산업용지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이며, ‘완주의 땅에 전주의 기업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교통 인프라 확충이라는 명분으로 제시된 삼봉-송천 도로 확장 역시 완주 접근성 향상보다는 전주 외곽지의 주택가치 상승을 노린 도시개발 전략이다. 보건소와 복지시설 일원화도 생활권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완주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계획으로, 오히려 서비스 접근성과 주민 체감 만족도를 낮출 수 있다.
전주시는 통합을 통해 특례시 지정을 원하지만 완주군이 희생을 감수하며 특례시 요건의 들러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특히 전주시는 통합청사를 완주에 짓겠다는 계획을 통해 상생을 보여주려 하나, 현실적으로 청사 공동화와 전주시 구도심 공동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전주시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익산시 통합 사례에서도 시청 이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익산군 지역은 오히려 소외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합 이후 행정 책임의 지속성이다. 통합을 주도한 시장이 물러나고 다른 인사가 들어서면 이전 약속들은 무효화되기 쉽고, 주민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익산-이리 통합 당시 함열읍으로 시청 이전을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당시 약속했던 각종 개발 계획 또한 무산되었다. 전주 역시 동일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통합을 추진한다면 완주의 자치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 예컨대 특별법 제정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에 대한 충분한 주민 협의가 뒤따라야 한다. 현재 전주시가 제시하는 상생사업은 정치적 필요와 중앙정부와의 협력을 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완주군을 흡수하여 전주 외연 확장에 이용하려는 성격이 짙다.
상생은 이름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실질적 자치권 존중과 대등한 행정적 기반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합은 결국 일방적 흡수에 불과하며, 주민의 삶의 질과 지역의 미래를 해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행정 통합이 아니라 양 지역이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협력할 수 있는 연합형 발전 모델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상생이며 지방자치의 가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