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인간은 더 나은 곳을 향하려는 삶의 의지로 한시도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존재다. 이것이 인류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왔다. 그 중심에는 현실 문제 해결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내포되어 있지만, 대두된 문제의 상당수는 당대가 처한 상황에서는 해결 가망성이 매우 낮다. 이로 인해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이 첨예해지기도 하고 내부 균열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를 해소하려는 시도로 한편에서는 유토피아문학이 등장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의 실현을 목표로 삼은 정치가 발전했다. 15만 자족도시는 완주군 행정부가 목표로 삼은 지점이다. 이것은 2015년 완주군 장기종합발전계획 수립 과정에서 채택된 것으로, 2025년까지 인구 15만과 ‘자족적 삶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다. 이 이상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완주군민들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15만 자족도시’라는 이 정책에서 유토피아적 기미가 느껴진다. 유토피아 문학의 기원은 토마스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인데, 그는 잘못된 경제 시스템이 당대 사회 문제를 야기 시켰다고 생각했다. 그가 새롭게 구상한 이 세계에는 사유재산이 없으며 직업에 귀천도 없다. 집은 추첨을 통해 분배되며 1
[완주신문]최근 경천면 신흥계곡에서 가야유적으로 추정되는 야철지(冶鐵址)가 발견됐다. 완주군은 총 54개소(봉수10, 산성9, 제철유적35)의 가야유적지를 발굴했다. 특히 봉수대는 당시 이곳에 반드시 지켜야 할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완주의 옛 힘을 상징하는 사례로 볼만하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곧이곧대로 수용해도 될까? 역사는 본질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학문이다. 불분명하게 내 던져진 어떤 대상에 상상으로 가미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 내포된 사건의 조각을 꿰맞추는 식으로 옛 스토리를 재생해낸다. 시간의 경과가 오래된 역사 일수록 해석자의 상상력이 더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사람들이 좋아 하는 것은 발굴된 유물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들 사이를 엮기 위해 조직된 상상일지도 모른다. 가야인들이 지켜내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번 발굴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삼국으로 알아온 고대 왕국의 역사를 다시 써야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학계는 그간 신라나 백제, 혹은 고구려 역사를 밝혀내는데 온갖 총력을 기울이면서 왜 가야왕국에 대한 조사는 지금까지 지연되어 왔을까? 그 해답은 일본의 역사왜곡
[완주신문]최근 공공기관은 ‘악성 민원인’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폭행하는 취객에다, 동사무소 행정실 직원의 머리채를 잡는 민원인이 있는가 하면, 구청에 8개월 동안 2800여건의 민원을 제기한 사람도 있다. 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글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고, 네티즌들 중 상당수는 본성적 측면에서 악성 민원인들의 행위를 평가했다. 이해 문제가 얽혀있을 수 있겠지만, 저런 정도의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본성적으로 악한 성향이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다. 완주군에서도 최근 악성 민원인으로 취급돼 사법처리를 받은 일이 발생했다.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자면, 배매산 고화토 폐기물 사건으로 몇몇 민원인들이 항의를 위해 완주군수실을 찾았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감정이 격해진 민원인 A씨가 “당신들도 이 냄새를 맡아봐야한다”며, 자신들은 수년째 이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폐기물매립장에서 시추한 고화토를 바닥에 쏟았다.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은 A씨를 악성 민원인으로 판단하고,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정말로 A씨가 악한 본성 때문에 고화토를 쏟은 것일까?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필립 짐바르도는 악성
[완주신문]기억하는가? 시(詩)가 인간의 정서를 쓰다듬어 주던 그때를. 시를 읊조리며 자유와 고독에 심취하던 그 낭만을. 시간의 샘[井]에서 느리고 게으르게 자아를 퍼 올리며 꿈을 찾아 방황하던 그 청년을.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일삼아 시를 암송하거나 느끼는 것은 효율적인 공부법이 아니다. 시란 그저 운율과 음조를 따져가며 시험 출제 유형을 익히는 대상일 뿐이다. 이 때문에 현대 청소년들은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시의 상징체계와 은유를 분석하지만, 시에 담긴 의미를 음미하지는 않는다. 시어 속에서 든 그리움이나 외로움 때문에 밤을 뒤척이는 대신 시인조차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며 새벽을 맞는다. 이렇게 청소년들은 진작부터 성과 사회(成果 社會) 이면에 축적된 피로와 탈진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 시대 교육은 미래의 더 나은 삶을 볼모로 그들에게서 ‘시’와 ‘시간의 샘’을 빼앗았다. 현대 청소년들은 어느 시대보다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유한 주체들로 명민하고 이성적인 존재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가 배제된 교육이 길러낸 이들의 정서는 거칠고 메마르다. 심지어 포악하기까지 하다. 지난 4월 모 중학교 2학년 이민호(가명·14) 군이 또래 학생 13명에게 집
[완주신문]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윤리심판원을 열고 당헌에 따라 완주군의회 의원 둘을 제명하기로 했다. 단합과 결속을 위해 내부그룹을 형성하고, 조직 구성원들의 사고와 이념을 일체화하는 것은 현대 정치판에서 흔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삶을 이어나갈 정도의 미약한 확신만 존재할 뿐이다.” 이는 19세기 영국의 정치 철학자 존스튜어트밀의 금언으로, 무오류성의 위험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는 민주주의 핵심에 ‘표현의 자유’를 두었다. 다양한 가치가 상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주장을 철회시킬만한 절대적 확실성을 보증하는 하나의 신념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 당헌 84조는 이에 반대하는 두 의원의 정치적 신념보다 더 우월한 것은 아니다. 당헌에는 정당을 운영하는데 좀 더 효율적일 수 있는 ‘약한 확신’만 있을 뿐, 그것이 무오류성을 담보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인식해야한다. 이 원리를 놓친다면 표현의 자유는 박탈당하고, 참된 민주주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표방한다. 이 지향점은 인류가 오랜 경험을 통해, 특정한 일인(一人)이나 일부 집단에게 독점적 정치권력을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지 깨달은 결과물이다.
[완주신문]“놀이터에 소음이 사라지면서 절망이 찾아 왔어요. 참 이상하지, 애들 소리가 없는 세상.” ‘칠더런 오브 맨’에서 간호사 미리엄이 주인공 테호에게 한 말이다. 이 작품은 멕시코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7년 작품으로 2027년 영국의 모습을 다룬다. 영화에서 전 인류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집단불임에 처했다. 이는 인류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이끌어낸 진화의 결과다. 영화 속 젊은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위해 결혼 기피는 물론이고 인위적인 불임시술에다 낙태까지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이것이 임신기능의 퇴화라는 미증유 사태를 낳았다. 왜 영화 속 청년들은 오직 자기중심적 삶만을 추구하게 됐을까? 그런데 이 상황은 쿠아론의 상상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대 우리나라 결혼 적령기 젊은 층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청소년들까지 결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결혼도 부담스럽지만 출산은 더 싫다고 한다. 이런 세태는 OECD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게다가 완주군 인구 감소 추세는 우리나라 총 인구 감소율 보다 그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하다. 도대체 청년들은 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됐을까? 통계청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완주신문]‘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이란 무조건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한다는 이론이다. 즉 우리의 풍요로운 삶은 농민이나 양돈업자의 자비심 또는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의 은혜로운 성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그들의 자기 이익 추구가 우리를 입히고 먹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현대 자본시스템이 이 사상을 이어받았다고 본다. 이 논리에 따를 경우 법적 한계 내에서 발휘되는 이기심은 타당하다. 하지만 이기심만으로 인류의 사회문화 현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근래 비봉면에서 불거진 양돈 농장 갈등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이론을 방증하는 사례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비봉면의 폐 양돈장을 매입했다. 기왕에 있던 양돈장이니 만큼 인허가 면에서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자금을 투입했다. 환경 부분에 문제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하자 없는 사업체로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봉면 주민들은 양돈농장 재가동 반대 시위를 연이어 열었다. 게다가 완주군은 지난해 말 해당 회사의 양돈 농장에 ‘불허가’ 처분을 내림으로써 군민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업체는 양돈장 재가동에 필요한 해결책을 찾으려 여러 차
[완주신문]죽음이라는 당장의 위협이 눈앞에 널브러진 초유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왜 교육에 신경을 쓸까? 대부분의 교육은 현재의 이익보다 미래 지향점을 좇는다. 때문에 위급한 순간 교육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앞에서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흐트마 간디는 ‘진리의 실험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인류는 시대정신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교육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왔다. 서양 지성의 기원이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시작됐다면, 동양의 지적 토대는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를 이끈 제자백가다. 한편에서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이성 추구 쪽으로 발전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윤리의식 함양을 중시하는 수기(修己) 관련 학문이 자리 잡았다. 이 유산들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활발한 교류로 동·서양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혼재되어 나타난다. 삶을 운용하는 실용적 차원의 지식 생산과 분배 방법론을 연구하는 한편, 타자와의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한 윤리교육을 다각도 측면에서 고려한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는 ‘사회의 작은 실험실’이다. 간디에 따르면 인성함양과 괴리된 채, 정보전달 위주의 지식 교육을 통해 기계적인 지성만을 도드라지게 하는 교
[완주신문]“기억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야. 눈을 감아도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에서 주인공 레나드가 텅빈 자신의 영혼을 향해 한 말이다. 영화에서 레나드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되는데, 그의 기억의 임계점은 10분이다. 무엇을 하든 10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잊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억 세계를 최대한 연장하기 위해 경험의 표식들을 사방에 남긴다. 그러나 그 표식들을 따라감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누수로 인해 아내를 살해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단기기억상실증이 자기내면의 문제라는 점에서 치유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구원 가능성을 설정한다. 여기에서 감독이 주목한 것은 레나드가 가진 기억의 진실성이 아니라, 그 기억이 레나드의 삶을 어떤 식으로 왜곡 하는가이다. 21대 국회는 출범 과정부터 범상치 않았다. 의석수 분배문제를 두고 여야는 상호비방과 온갖 협작으로 불쾌한 정치풍을 형성하더니, 정치개혁특위까지 발동시켰다. 민망해서 언급하기도 곤란한 추태들 끝에 대략 50cm에 달하는 기형적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탄생했다. 이번 총선에 대한 완주군
[완주신문]인간을 정의하는 여러 속성 중 하나는 사회성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정투쟁을 통해 삶을 연대하는 속성이다. 때때로 전쟁이나 전염병같은 혼란으로 인간 관계양상이 변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인류는 언제나 서로에 의해 삶을 지탱해왔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조건인 동시에 본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가 지구를 뒤 덮자, 정부는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했다. 완주군도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동참하는 한편 긴급지원금으로 사업 중단 시 발생하는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전된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코로나19를 저지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고유한 속성을 고려할 때, ‘거리두기’ 정책은 가당치도 않는 발상이다. 이 조치의 궁극적 목표는 생명보존이다. 즉 코로나19로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면, 사회성을 통해 형성된 정애(情愛)는 접어두고, 정부의 행정 조치를 따라야한다. 이 경우 자기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 것이 옳다. 그 누구라도 코로나19 증상을 발견할 경우 ‘1339’ 에 신고해야한다. 이를 어길 시 감염병 예방법에 의해 천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1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