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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진리 실험실

[완주신문]죽음이라는 당장의 위협이 눈앞에 널브러진 초유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왜 교육에 신경을 쓸까? 대부분의 교육은 현재의 이익보다 미래 지향점을 좇는다. 때문에 위급한 순간 교육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앞에서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흐트마 간디는 ‘진리의 실험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인류는 시대정신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교육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왔다. 서양 지성의 기원이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시작됐다면, 동양의 지적 토대는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를 이끈 제자백가다. 한편에서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이성 추구 쪽으로 발전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윤리의식 함양을 중시하는 수기(修己) 관련 학문이 자리 잡았다. 이 유산들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활발한 교류로 동·서양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혼재되어 나타난다. 삶을 운용하는 실용적 차원의 지식 생산과 분배 방법론을 연구하는 한편, 타자와의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한 윤리교육을 다각도 측면에서 고려한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는 ‘사회의 작은 실험실’이다.

 

간디에 따르면 인성함양과 괴리된 채, 정보전달 위주의 지식 교육을 통해 기계적인 지성만을 도드라지게 하는 교육은 무가치하다. 이는 합리적 이성만을 극대화 할 뿐 수기의 덕목을 간과함으로써 학문의 균형을 깨뜨렸다. 따라서 참된 교육이란 학습자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 속에서 최고의 것을 이끌어 내는 일체의 노력을 의미하지만, 어긋난 교육은 오직 자기 이익만을 쫓는다. 

 

즉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 내부에 있는 자기중심적인 집착과 폭력적인 요소를 완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면의 도덕성을 되살림으로써 진리를 추구하게 하여 자아실현에 이르게 한다. 이는 사회적 발전과 공존할 수 있는 ‘전인적 인간’을 양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간디가 학교를 작은 실험실로 보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간디가 제시한 이상적 교육자는 내적 평화를 얻은 존재로 봉사와 선의를 실천함으로써 학생의 존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주어진 텍스트를 넘어서는 삶의 진리를 학생들에게 깨우쳐 주는 존재가 진정한 스승이라는 말이다. 또한 학생은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의 자질을 발견 계발하며 세심한 관찰과 소통을 통해 자아를 형성해 나가야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사회적 의제로 대두된 사안의 진리성 여부를 검토하고, 이것을 받아들일 경우 사회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고찰한다. 요컨대 학습자들은 진리 실험을 통해 옳거나 그른 것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삶의 기준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육이 붕괴되면 미래 세대뿐만 아니라 당대 삶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온라인 원격수업에서도 이러한 진리의 실험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됨에 따라 초·중·고등학생 약 540만명 전원이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을 이용해 원격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동영상 플레이 지연 같은 문제가 간간이 발생했지만, 우려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수업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안정세를 보인다. 어쩌면 원격수업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앞으로는 가야만 할 길 일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경험으로 볼 때 전염병이 만연한 미래를 예상할 수도 있고, 급격한 인구 감소와 더불어 학습인구 감소 역시 추측가능하다. 이렇다면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을 포기하고 새로운 학습 시스템 도입 방안을 생각해 봐야한다. 

 

이번 원격수업 경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원격수업으로도 당대의 이념을 실현시킬 수 있는 도덕적 인간상, 즉 사회적 발전과 공존할 수 있는 ‘전인적 인간’을 양성할 수 있을까? 교사와 학생의 친밀한 만남과 전면적인 상호 교류 없이도 ‘사회의 작은 실험실’을 열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이 염려에 대해 간디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왜 가르칠 것인가’를 먼저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이 입장에서 보자면 교육은 방법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즉 학습 내용을 잘 구성한다면 이를 전달하는 매체가 원격수업이라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바꾸어 말하면 대면교육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회적 발전과 공존할 수 있는 ‘전인적 인간’ 양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는 현대 학교가 맹목적 문명 발전을 향해 있다고 비판한다. 이 교육에는 실용지식 습득과 물질 생산에 필요한 정보만 제공할 뿐, 인성교육이 매우 약화되었다. 결국 인성교육의 실패로 n번방 같은 처참한 인간의 수단화가 발생했다.

 

이제 간디의 조언을 받아들여 새로운 교육 시스템 원격수업에 ‘사회의 작은 실험실’을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은 새로운 학습 시스템에 실용적 차원의 지식 생산과 우리시대의 이념을 이끌 도덕의식을 어떤 비율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