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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달에 걸린 15만 자족도시

[완주신문]인간은 더 나은 곳을 향하려는 삶의 의지로 한시도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존재다. 이것이 인류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왔다. 그 중심에는 현실 문제 해결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내포되어 있지만, 대두된 문제의 상당수는 당대가 처한 상황에서는 해결 가망성이 매우 낮다. 이로 인해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이 첨예해지기도 하고 내부 균열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를 해소하려는 시도로 한편에서는 유토피아문학이 등장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의 실현을 목표로 삼은 정치가 발전했다.

 

15만 자족도시는 완주군 행정부가 목표로 삼은 지점이다. 이것은 2015년 완주군 장기종합발전계획 수립 과정에서 채택된 것으로, 2025년까지 인구 15만과 ‘자족적 삶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다. 이 이상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완주군민들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15만 자족도시’라는 이 정책에서 유토피아적 기미가 느껴진다.

 

유토피아 문학의 기원은 토마스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인데, 그는 잘못된 경제 시스템이 당대 사회 문제를 야기 시켰다고 생각했다. 그가 새롭게 구상한 이 세계에는 사유재산이 없으며 직업에 귀천도 없다. 집은 추첨을 통해 분배되며 10년마다 한 번씩 바꾼다. 모든 사람이 일을 하므로 노동 시간이 짧아 오전과 오후에 3시간씩만 노동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복지 시스템을 활용해 여가를 즐긴다. 필요한 물품들은 언제나 요청만 하면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받을 수 있다. 국가 통치를 담당하는 정치가는 시민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데, 중대한 정책 문제는 충분한 공개 토론을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린다. 이곳은 완전히 자족적인 도시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만족한 삶을 보장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땅이므로 ‘달에 걸린 허상’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상 세계가 등장했는데, 시공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유토피아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집단 구성원의 자족적 삶의 중시와 시대적 울분의 일시적 해소로 정신적 만족감을 준다는 것. 또 당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라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이를 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 역시 현실에서 당면한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유토피아를 꿈꾼다.

 

유권자의 소망을 포착한 정치인들은 유토피아적 요소가 내포된 자족적 삶의 가치를 정치공약으로 제시하곤 한다. 15만 자족도시에 대한 정책에서도 이런 낌새가 보인다. 이 정책은 주변 도시의 성장으로 인한 완주지역의 쇠퇴와 군내에 거주하던 기업들의 전출로 실의에 빠진 군민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그런데 완주군 행정부의 정책방향을 지켜보면 15만 자족도시 건설에 과연 관심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선 계획수립을 위해 사용한 모델 채택에도 문제가 많지만, 사업 추진 방향도 일관성이 결여됐다. 인구부문에서 살펴보자면 전북연구원은 2025년이 되면 완주군 인구가 15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완주군은 사회적 추세나 인근 도시개발과 집값의 기대 상승 등 거시적 변화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 연구물을 그대로 수용하여 10년간에 걸친 종합발전계획은 수립했다. 전제가 잘못됐으니, 결론은 빤하다. 2015년 장기종합발전계획 수립 이후 5년이 지났지만 별 진전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2025년이 되어도 완주군 인구가 15만에 달할 가망성은 거의 없다. 이 정책에는 7개 부문으로 235개 세부전략과제를 담았지만, 이대로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불가능하다. 결국 이 구상은 소외된 완주군민에게 흘깃 스치는 정신적 만족에 지나는 것은 아닐까?

 

정책입안가와 문학가의 공통점은 현실 문제로 인해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 해결 방식과 결과에서 큰 차이가 있다. 토마스 모어가 설계한 유토피아는 자기체계 내부에서는 완전한 자족적 삶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곳은 독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실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꾸며낸 달에 걸린 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도시 계획자는 자신이 구상한 세계를 책임질 의무가 없다. 반면 정책입안가들은 자신이 제시한 이상 세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세운 제안이 사회 구성원들의 실질적 삶을 개선하지 못할 때 유권자들은 분노할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완주군의 정책 입안가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이상주의적 소질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다. 최근 완주군 인구가 소폭 증가세를 보인다고 해서 자축하며 법석을 떨 일이 아니라, 장기종합발전 사업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 15만 자족도시를 달에 걸지 않고 현실에서 실현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