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지난 추석 무렵 거리마다 넘쳐나는 현수막 가운데 ‘소병래 현수막’이 유독 눈에 띄었다. 대문 밖에 나서 “진지 잡수셨어유우?” 이런 인사도 반가운데 색깔을 넣어 인쇄한 베 폭이 완주로(完州路) 외 좁은 길목까지 내걸려 그 정성 대단하다. 보는 이마다 ‘무슨 뜻! 웬일이야?’ 한 마디씩 한다. 의원 경력을 소개한 걸로 봐 ‘정치적인 포부를 들어낸 게 아니냐?’ 이런다. 2022년 대통령-보궐선거-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선거가 있으니 ‘꿈꾸는 게 아니냐?’ ‘협상 전략이냐?’ 추측이 만발한다. 군수?→군의원?→도의원?→도지사?→교육감?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쉬 알 터인데 제 각각 상상만을 펼쳐나간다. 군수라면 박성일(1955년생) 현직 외(外)와 대결, 도지사 출마인 경우 송하진(1952년 생) 외와 겨룬다. 소병래 인사자(人事者)는 완주군의원(다선)→전북도의원을 했으니 경륜은 잘 갖춘 편. 다만 당선여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다음은 유권자 표심이다. 열하나 군의원과 송지용·두세훈 도의원 마음도 잡아야하며,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선거는 귀신이 붙었다고 한다. 비봉면 이전리 홀아범 외아들 이존화 씨는 살 길이 막막해 압록강을 건넜고, 해방이 되자 부
[완주신문]지난 1968년 용계원에서 1년 산 좋은 추억 나눌 분이 적어 안타깝다. 오라하는 이 없고, 막상 찾아 갈 집 없다. 이는 지나가는 세월 탓이다. 당시 마을 분들마다 나를 반겼고, 나 역시 고마웠음은 모두 인정 때문이었다. 6․ 25전쟁 후유증으로 상처가 컸지만 말 함부로 안했고, 나 또한 그 아픈 데를 건드릴 필요 없어 내 일만 열심히 했다. 떠난 지 40년! 1년 산 나에게 공주 같은 따님 혼인 주례 부탁하는 고운 심성이 바로 용계원 인심이다. 이 인연이 노년을 행복하게 한다. 그럴수록 용계원을 머릿속에 담고 사는데 마침 ‘충남 빨치산 전적지 답사기[임방규 빨치산 격전지 답사(9)]’에서 ‘용계원’ 이야기를 보았다. “(송세영 설명) ‘용계원’ 이곳은 1950년 12월 10일경부터 1951년 1월 17일까지 충남도당 도 사령부와, 도 기관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부락입니다. 일제시대 한지를 만든 공장이 있었고, 산간 부락이면서도 부촌이었습니다. 1951년 1월 14일, ‘인민군과 중국지원군의 서울 입성’을 환영하는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충남도당 주최로 열렸지요.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당일 밤 참모부 일꾼들의 경각성이 부족했던 모양
[완주신문]도시 주변 나들이에 자가용 좋지만, 시내버스도 탈만하다. 버스 방향 표시 세 자리 수 가운데 100 단위 3이면→삼례, 5면→봉동•고산, 8이면→소양(所陽) 9는 구이상관방면이다. 시내버스 노선 번호 알아두면 편리하며, ‘817번’은 하루 아홉 번 다니는데 전주시 평화동3가에서 출발해 모래내시장, 고려병원, 가소, 소양, 전북체육고교 앞, 왕정, 화심, 신원리, 삼중리, 원신촌을 거처 월상리에 닿는다. 오가는 길 풍광도 아름답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메 맛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큰 나무가 오래된 동네임을 알려주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좋으며, 골목 안에 들어서면 산촌 모습 완연하다. 산자락 너른 밭에 고사리를 심었고, 고개 들면 하늘이 좁게 보인다. 전후좌우 산이 가깝다는 말이다. 마을 이름 ‘달 월(月)’자에+‘윗 상(上)’자→월상리(月上里). 그럴듯한 이름이다. 산이 4방을 둘러 싸 밤이면 ‘달만 머리 위에 높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그렇다. 그런데 근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익산 JC에서↔장수 분기점까지의 고속도로가 나며, 산과 산 사이에 높고 긴 다리를 놓자, 깊은 밤 달뿐만이 아니라, 드높은 ‘다리 위로’ 자동차가 밤낮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