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암 이삼만과 추사 김정희 만남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전국에 답사 열풍을 불게 한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에 추사 김정희와 창암 이삼만이 만나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완당은 추사의 또 다른 호이다. 추사는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의 손자 김노경의 아들로 시쳇말로 잘나가던 금수저 사대부였다. 추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유복한 집안에서 천재로 살았던 사람이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경주 김씨에 대한 견제로 비록 몸은 제주로 유배를 떠나지만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유배 길에 전주를 지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71세의 창암은 제자들과 함께 추사를 찾아 자신의 글씨를 보여 주며 추사의 평을 부탁했다. 창암의 글씨를 보면서 완당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 세련된 모더니스트가 한 점 거리낌도, 부끄러움도 없이 풍기는 촌티 앞에 당혹했을 희한한 광경을 나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완당의 눈에 이쯤 되면 촌티도 하나의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완당은 할 말을 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윽고 완당이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선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모욕이나 당한 사
[완주신문]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김윤주 이사는 31일 완주군청 앞에서 “로컬푸드협동조합을 지켜달라”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로컬푸드협은 이사장 선출 등을 둘러싸고 수년째 내홍을 겪어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조합에서 운영하던 직매장 4곳을 한꺼번에 완주군에 반납하려는 안건을 두고 대의원총회에서 소동을 빚기도 했다. 김윤주 이사에게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를 물었다. ▲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을 지켜달라는 1인 시위벌이고 있는데, 로컬푸드가 위협받고 있는가? - 오는 7월 중순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던 직매장 모악점에 대한 계약기간이 만료된다. 올초 혁신점은 경쟁입찰을 통해 운영권을 완주공공급식센터에서 가져갔기에 이번에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완주군에서 조합 내홍을 이유로 나머지 4개의 직매장을 순차적으로 공공급식센터로 넘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0년 가까이 천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농사짓는 시간을 쪼개 교육을 받고 회의를 하며, 어렵게 일군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을 이렇게 사라지게 보고만 있을 수 없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런 간절한 애타는 목소리가 행정에도 전달되길 바
[완주신문]벚꽃이 흩날리고 나면 산은 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겨울과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겨우내 건조했던 풍경에 생기가 돌면서 촉촉함이 묻어난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특별히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 시기는 무엇을 해도 잘 어울린다. 코로나19로 활동에 제약을 받는 언택트 시대에는 드라이브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연둣빛으로 물든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은 최고다. 가다가 잠시 내려 산책도 겸할 수 있는 코스라면 금상첨화겠다.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송광사와 위봉폭포로 이어지는 길이 바로 그런 코스다. 완주군 송광사로 가는 길은 벚꽃 터널로도 유명한 곳이다. 주변에는 BTS가 다녀가면서 더욱 유명해진 오성한옥마을과 카페들이 있어 계절에 관계없이 많이 찾는 절이다. 송광사에서는 한창 부처님 오신 날 준비에 바쁘다. 보통 절에서는 마당에 줄줄이 등을 다는 것이 익숙한 풍경인데, 송광사에서는 등으로 탑을 만들었다. 절 바깥에도 있고, 절 안쪽으로 들어가면 절 마당에도 등탑이 여러 개 있다. 색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당가에 핀 하얀 목단이 참 곱다. 어느 꽃송이는 살짝 분홍빛이 감돌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순백이다. 송광사 안에는 목단
봉황이 머문 골짜기 봉서골 봉서사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과 신록이 푸르른 계절이면 찾아가는 곳이 봉서사이다. 봉황이 깃들었던 봉서골에는 비슷한 이름의 전혀 다른 성격의 유적지가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둥지를 틀고 있다. 대한민국 8대 명당 중의 하나인 밀양 박씨의 재실인 봉서제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았던 대찰 봉서사이다. 봉서제가 유교를 대표한다면 봉서사는 불교를 대표하는 셈이다. 봉서제는 두억마을에서 농촌체험시설로 숙박과 예절학교, 8대 명당 답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제법 성공적인 마을사업을 풀어가고 있다. 봉서제를 스치듯 지나쳐 오르면 봉서사에 닿는다. 봉서사 입구에는 봉서사에 기거 하셨던 많은 분들의 부도탑이 있다. 부도탑은 스님들이 돌아가시고 화장을 할 때 수습되는 유골이나 사리를 안치하는 탑이다. 보통은 사찰의 뒷산에 모시지만 간혹 사찰의 경내에 있기도 하고 사찰 초입에 모시기도 한다. 봉서사는 천년고찰로 이곳에서 기거하셨던 분들이 많아서인지 재법 많은 부도탑이 있다. 이 많은 부도탑 중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부도탑이 있는데 바로 진묵대사의 부도탑이다. 진묵대사의 부도탑은 해마다 조금씩 자라고 있다하여 방송 출현도 한 제법
[완주신문]겨울은 단단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봄을 대비했다. 예년에 비해 매서운 강추위를 뽐내기도 했던 터라 나름 여유도 있었다. 매년 겨울에도 푸름을 유지하며 언제나 기세등등했던 대나무 군락지를 여지없이 항복시켜 가는 곳마다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봄은 겨울의 움직임에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 거센 흐름을 아무리 강했던 겨울도 막을 수는 없었다. 제대로 손쓸 겨를도 없이 겨울은 무장해제를 당하고 봄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렇게 찾아온 봄은 꽃으로 계절이 바뀌었음을 전국에 알렸다. 매화, 산수유꽃을 시작으로 봄꽃 향연이 시작되더니 이내 벚꽃이 온 나라를 하얗게 물들였다. 드디어 완연한 봄이 되었음을 선언했다. 완주군도 예외가 아니다. 곳곳에서 화사하게 핀 벚꽃이 겨우내 움츠려 있었던 마음을 다독거려준다. 요즘은 완주군에도 예쁜 벚꽃길이 많아 굳이 어느 한곳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을 하나 선택한다면 구이저수지를 꼽는다. 벚꽃 구경과 함께 구이저수지 둘레길 산책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이저수지 둘레길은 저수지를 한바퀴 순환해서 걷는 코스와 중간에 있는 술테마박물관까지 다녀
[완주신문]인류의 출현부터 현재까지 인류는 긴 시간 동안 역사를 이룩해 왔다. 인류의 역사를 구분하는 대표적 기준점이 ‘문자’이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여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를 선사시대라 하고, 문자를 활용하여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시대를 역사시대라고 한다. 역사시대는 기록을 통하여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 사상 등의 보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의 역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선사시대는 사용된 도구의 재질에 따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 완주에는 초기 철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가 존재한다. 바로 용진읍 상운리유적이다. 상운리유적은 1996년 익산-장수 고속도로 완주 IC를 건설하기 위해 지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의 발굴조사 결과 상운리에서는 점토곽• 목관 116기, 옹관 38기, 석곽 9기, 목관묘 35기, 옹관묘 5기가 확인되었다. 이는 국내에서 발견된 분구묘 중 최대 규모로 정치・사회・문화・기술・이념 등 당시 사회체제가 압축되어 있는 ‘고고학적 아카이브’이다. 고고학적 아카이브인 상
[완주신문]쿠팡이 전국 단위의 혁신적 물류시스템 구축을 위해 완주군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며, 완주군은 지역경제 전반의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쿠팡 등 택배회사의 노동 문제는 전국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쿠팡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총 9명이다. 이에 황희숙 완주노동상담소장을 만나 향후 쿠팡과 관련된 노동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 쿠팡이 완주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 이로 인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떤가?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좋은 일이다. 이는 최종 목표인 주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삶의 질이다. 이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이를 위해 기업유치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데, 정치권과 행정은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지난해 3월 완주공단 노동자대표회의는 완주군수를 만나 기업에 대한 △근로기준법 준수 서약 △임금체불, 불법파견, 중대산업재해 기업 패널티 방안 △공단 내 노동자 후생복지 시설 점검 및 개선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행정의 반응이 시원
[완주신문]몇차례 기온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더니 슬며시 봄이 고개를 내민다. 잘 알겠지만, 가을은 하늘에서 스멀스멀 내려오지만 봄은 언 땅이 풀리면 그 틈새를 비집고 나와 겨울이 떠났음을 알린다. 이 시기가 되면 SNS에서는 연일 봄꽃 소식을 전한다.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꽃들이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꽃에는 복수초, 바람꽃, 노루귀, 얼레지 등이 있다. 완주군에서 이런 꽃들을 볼 수 있는 곳은 경천면 불명산에 있는 화암사이다. 봄꽃을 보기 위해 나선 날, 유난히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봉동, 고산을 지나 경천면 소재지를 거쳐 화암사로 가는 마을길로 들어섰다. 오전 10시가 되었는데 아직도 안개는 꿈쩍하지 않는다. 요동마을 입구에 서 있는 시무나무가 어렴풋이 보인다.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안갯속에 잠긴 몽환적인 분위기도 썩 괜찮아 보인다. 익숙한 것은 편안해서 좋지만 새로운 것은 신선함이 있어 좋다. 요동마을을 지나 화암사 주차장까지 가지 않고, 숲 입구에 있는 연화공주정원부터 걷기로 했다. 봄꽃 구경을 하려면 안개가 걷히는 시간이 필요해서 숲길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연화공주정원에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지만 사람이 많
고조선과 진국(辰國)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한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한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친 이유를 사기에는 “위만은 왕위를 아들에게 전하고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러서는 꾀어 낸 한(漢)나라의 망명인이 더욱 많아졌고, 또한 여전히 천자를 알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가 글을 올려 천자를 알현하고자 하였는데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도록 하였다.”(『사기』권115, 「조선열전」55)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조선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록이 너무 빈약하여 중국의 기록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여러 역사서를 비교해 보면 고조선은 중국의 한나라와 한반도 남부의 '진'이라는 나라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중계무역으로 얻어진 부는 고조선을 강국으로 만들었다. 고조선이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한나라는 고조선을 공격하였다. 1년 동안 한나라의 침입을 버텨낸 고조선은 지도층의 분열로 결국 멸망한다. 고조선의 강역을 요서와 요동,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비정한다. 이유는 이 지역에서 탁자식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이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반도 남부에서는 바둑판식 고인돌과 세형동검이 주로 발견된다
[완주신문]완주의 정체성 혹은 완주의 재발견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 문득 ‘완주의 선사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인류 역사에서 시대를 나누는 기준점은 문자이다.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을 선사시대라 하고, 문자로 역사를 기록한 시대를 역사시대라 한다.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복원한다. 선사시대는 사용한 도구에 따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로 구분하는데 기원전 3500년 무렵부터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완주에서는 구석기 혹은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봉동, 구이 등지에는 많은 고인돌이 남아 있어 완주의 역사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물로 경제력이나 정치력이 있는 지배계층의 무덤이다. 세계에 약 6만개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중 4만개 정도가 우리나라에 있다. 고인돌은 지배계층의 무덤이기에 고인돌 아래에서 간혹 부장품으로 묻은 유물이 발굴되기도 한다. 불행히도 완주의 고인돌은 아직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발견된 부장품이나 성격이 규명된 고인돌은 없다. 완주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고인돌이 봉동읍 용암리에 있다.
[완주신문]겨울에는 눈이 내려야 겨울 맛이 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기후 온난화가 가져온 큰 변화 중의 하나이다. 어릴 적에는 겨울이 되면 거의 매일 아침 눈을 쓸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매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눈이 자주 내렸다는 의미겠다. 낮에는 눈이 그쳤다가 밤새 눈이 내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수북이 쌓여 있곤 했다. 그런 날이면 아침 일찍 서둘러 눈을 치워야 했다. 사람들이 눈을 밟고 다니면 길이 미끄럽게 되기 때문이다. 마당부터 시작해서 마을 안길까지 눈을 쓸어 길을 냈다. 그때는 매일 반복되는 그런 일상이 힘들게 느껴졌는데 눈을 보기 어려운 요즘에는 오히려 그 시절이 그립다. 요즘 겨울철에는 어쩌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바쁘다. 눈이 오면 가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눈이 내렸을 때도 그랬다.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먼저 만경강 설경을 보고 싶었다. 계절마다 변화무쌍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만경강의 눈 덮인 풍경이 궁금했다. 더 많은 것을 볼 요량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주요 포인트에서만 내려서 설경을 보는 것으로 했다. 만경강 설경 감상 시작점은 고산 삼기정(三奇亭)이다. 삼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