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후원하기

오로지 오롯한 고을, ‘완주’

정체성 찾기 지역특별전 개최

‘여러분이 생각하는 완주는 어떤 모습인가?’
딱히 구심점이 없는 완주는 주민들조차 이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완주의 정체성 찾기는 매우 시급하다. 각종 역사, 문화에 대한 재조명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완주군민들에게 타 지역과 같은 상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 이에 18일부터 완주군은 국립전주박물관과 공동으로 ‘오로지 오롯한 고을, 완주’ 지역특별전을 국립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오로지 오롯한 고을, 완주’ 특별전시는 전북지역 각 지자체들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는 ‘전북의 역사문물전’ 일환으로 완주군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전시다. 

 

만경강유역에서 확인된 완주군의 선사‧고대(구석기~후백제) 문화를 주제로 총 3부로 구성해 완주만의 특색 있는 역사 정체성에 대한 모색과 그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주목한다. 

 

전시기간에는 ‘만경강유역의 고고학적 성과’를 주제로 완주군이 주관하고, 한국청동기학회가 주최하는 지역특별전 기념 학술대회(21일)와 완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완주 크리에이터 페어(22일)가 개최된다. 

 

또한 지역 창작극 ‘삼례, 다시봄’ 문화공연(내달 6일)이 개최되는 등 풍성한 볼거리와 배울 거리로 채워질 예정이다.

 

 

하이테크놀로지 중심
초기철기시대 완주 사람들은 당시 최첨단 소재인 청동을 다루는 기술을 서북한 지역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이를 이용한 금속공학적 기술로 첨단산업의 중심지 완주를 이루었다. 청동기뿐만 아니라 ‘철’이라는 신소재의 이른 도입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완주가 한반도 하이테크놀로지의 중추였음을 보여준다.

 

 

마한의 자존심
전북 마한사회의 중심에는 완주가 있고 대표적으로 상운리 유적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마한계의 무덤 중 최대 규모와 밀집도를 보이는데, 30여 기의 분구묘에서 150여 기의 매장주체부가 확인됐다. 토기 300여점, 철기 500여점, 옥류 6000점이 출토돼 당시 상운리 사람들의 위세를 짐작케 한다.

 

 

현대미술로 재해석된 후백제
후백제의 사찰로 추정되는 완주 봉림사지에서 출토된 석등, 석탑, 삼존불 등의 불교 조각품은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봉림사터에 서려 있는 후백제 사람들의 염원과 기원을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전시구성 중 ‘후백제와 봉림사지’ 주제에서는 완주의 현대미술 작가 4인과 공동작업을 실시했다. 

 

 

85살 ‘완주’ 그보다 긴 시간
지난 1915년 고산군이 통합돼 전주군이 설치되고 1935년 전주군은 완주군으로 개칭된다. 이렇게 완주라는 이름을 얻은지 85년.

 

하지만 그 안에 살던 완주 사람들의 이야기는 짧지 않다. 이 땅에 금속문화가 꽃 피우던 시절 한반도의 주인공들이었다. 또한 자신들만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며 꿋꿋하게 살아왔다. 2100여년 전 대륙의 선진문화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여 한반도 금속기술의 선구자이기도 했으며, 한때는 전북지역 마한사람들의 중심이자 자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