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대간선수로는 만경강 수계 상류의 물(대아댐, 경천저수지)을 고산 어우보(취입구)에서 취수하여 63Km의 인공 도수로를 통하여 군산 옥구저수지까지 공급하는 수로로 주로 농업용수로 사용하지만 익산 신흥정수장에서 정수된 물은 상수도로 사용된다. 본지를 통해 ▲일제 강점기 일제에 의해 수탈의 물적 토대로 건설된 대간선수로의 역사성과 상징성 ▲대간선수로의 처음 건설과정과 개량 개선에 의해 변화된 현재의 모습 등 토목과 수리 측면에서의 탐구 ▲대간선수로의 기능과 역할, 특히 식량자급 또는 풍년 농사를 위한 거대하고 체계화된 수리시스템에 대한 접근 ▲대간선수로가 통과하거나 지나가는 인근의 도시와 마을들에 관한 이야기 ▲대간선수로의 창조적 미래, 문화적 활용 가능성 등에 대한 탐구 등을 전하려 한다.<편집자주> 경천저수지, 대아저수지, 동상저수지에서 흘러나와 모여져 만경강으로 흐르던 물이 고산 어우리에 이르러 어우보를 만나 그 일부가 다른 곳으로 흐르게 되니 바로 대간선수로이다. 보를 넘어서 흐르는 물은 바다를 향해 만경강으로 흐르며, 보 한쪽에 모여 대간선수로로 들어선 물은 옥구저수지로 향하는 과정에 들판을 적시고 익산사람들의 식수로도 사용된다. 간
[완주신문]어렸을 적부터 많이 듣던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X들이 우리 민족을 식민 지배하며 나쁜 일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하천 정비나 농수로 시설들은 기가 막히게 잘해 놓았어”라는 어르신들의 이야기 말이다. 실제로 일본 식민지배 시기에 많은 강에 방천이 생기고, 농수로들이 만들어져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의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대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우리가 걷게 될 대간선수로를 통해 농업생산력이 획기적으로 증대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 민족은 왜 식민 지배 시절처럼 농업 기반을 잘 만들지 못했을까? 일제가 우리에게 주입하고 지금까지도 잔재로 남아 우리에게 속삭이듯 ‘우리 민족이 열등해서 비옥한 땅을 개발하지 못하고 늪지나 황무지로 방치하고 있었을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혹시 우리 민족은 만경강 인근의 열악한 땅을 굳이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조선시대의 인구를 살펴보았다. 조선시대의 인구는 임진왜란과 소빙하기 등 요인이 있기는 했지만 1000만명에서 1700만명 사이에서 수렴해 가며 정체되었다. 여기에 쌀 생산량을 살펴보면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