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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위기로 완주군 친환경 농업 ‘흔들’

환경부, 생태계교란 생물 지정고시 논란
조류독감 문제로 오리농법 등 대안 없어
농약·비료 사용하는 관행농법으로 회귀

#완주군 봉동읍에서 지난 2014년부터 우렁이를 이용해 벼농사를 짓고 있는 A(48)씨는 논에 메뚜기와 도롱뇽이 생기는 등 생태계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걱정이 생겼다. 우렁이가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되면 우렁이를 이용한 농사를 포기해야 될지도 몰라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소위 ‘관행농법’이라는 비료와 농약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경제성보다 친환경에 가치를 두고 해온 농사이기에 미련이 많이 남는다.

 


친환경농법에 이용하는 우렁이가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될 경우 고산농협을 주축으로 한 완주군 친환경 벼농사가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십수년간 노력으로 체계를 잡아온 생산부터 유통까지, 나아가 축산분뇨를 퇴비로 선순환 시키는 친환경 농법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 환경부 생태계교란 지정 예고
지난달 1일 환경부는 ‘생태계교란 생물 지정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은 국내 생태계의 균형을 어지럽힐 우려가 있다며 왕우렁이 등 6종을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왕우렁이는 평균 4㎝ 길이로 토종 우렁이보다 몸집이 크다. 우리나라에는 1983년 식용으로 처음 들어왔으며, 1990년대초부터 논 잡초를 먹이로 뜯어먹는 습성이 알려지며 제초제를 대신하는 친환경농법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20여년간 확산된 왕우렁이를 생태계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생물로 평가하고 있다. 왕성한 번식력과 식성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죽지 않고 봄까지 살아남는 특성 때문이다.

 

■ 우렁이 사용해 오던 친환경 농가 혼란
친환경 벼농사를 짓던 농가들 대부분이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활용하고 있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고산농협에 따르면 완주군내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는 100여곳, 인증을 받지 않고 우렁이를 사용하는 농가까지 합산하면 200여 농가로 추산된다.

 

전국적으로도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000년 307농가, 179㏊에서 2013년 9만336농가, 10만7089㏊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왕우렁이가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되면 수입·반입·사육·재배·방사·이식·양도·양수·보관·운반·유통이 금지된다. 이 때문에 왕우렁이를 더 이상 농사에 이용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 친환경 농법 우렁이 외에 대안도 없어
하지만 친환경 농사를 위한 우렁이를 대체한 방법도 딱히 없는 실정이다.

 

우렁이를 제외한 친환경 농법으로는 오리가 있지만 오리는 매일 논에 내고 들이는 수고로움이 우렁이에 비해 크다. 우렁이는 한번 뿌려 놓으면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매년 발생하는 조류독감 문제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게다가 지난 2009년 정부와 친환경농업계는 중부지방 왕우렁이 월동조사, 2010년 충남·북 왕우렁이 생태연구, 2016년 민관합동 월동조사 등을 통해 왕우렁이가 농업과 환경에 기여하는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 것을 확인하고 적정한 관리를 하기로 결론낸 바 있다.

 

이처럼 생태계교란 생물 지정 여부가 해묵은 논제가 된 것은 왕우렁이를 대체할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 ‘관행농법’ 회귀...친환경 시스템 붕괴 위험
이 때문에 친환경 농사를 짓던 대부분 농가들은 다시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는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고산농협 관계자는 “우렁이 외에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에서 이를 규제하면 대부분 농가들은 친환경 농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는 관행농법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 어렵게 친환경 시스템을 만들어놨는데, 이게 무너질 수도 있다 생각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 새만금 환경문제로 시작된 고산 친환경 농법
이외에도 고산면에서 친환경 농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새만금 문제도 관련이 있다. 새만금 수질악화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상류부터 관리돼야 한다고 해서 만경강 상류인 고산에서 친환경 농법이 시도됐다는 것.

 

고산농협 관계자는 “친환경 농업이 시작될 당시 전북 환경단체 등과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새만금 수질을 위해서 상류부터 깨끗하게 관리돼야 한다는데 지역 농민들이 동의했고 고산에서 이를 먼저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 환경농업단체 반발
이에 지난달 21일 환경농업단체연합회는 “왕우렁이는 농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제초문제를 해결해주고 화학 제초제 사용으로 인한 생태계파괴를 방지하는 등 친환경농업 확대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며, “농업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왕우렁이를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하려는 환경부의 독단적인 행태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친환경농업단체들은 이앙한 벼가 6주 정도 자란 후 왕우렁이를 투입하면 어린 벼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육식성 포유동물을 천적으로 두고 있어 개체수 증가에 따른 피해도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 봉동읍에서 우렁이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A씨도 “오히려 새들이 우렁이를 많이 잡아먹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 정치권도 거들어
왕우렁이문제가 친환경농업과 직결된 만큼 정치권의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비례대표)은 최근 “마땅한 대체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왕우렁이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친환경쌀을 생산하는 12만㏊ 규모의 논에 우렁이 대신 제초제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우렁이농법 중단에 따른 친환경학교급식 차질은 물론 제초제 사용증가로 인한 생태환경의 피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농민·소비자와 충분히 논의한 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발 물러선 환경부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까지 행정예고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왕우렁이의 생태계교란 생물 지정을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 제출됐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는 “당초 올해 안에 고시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반대 목소리가 큰 만큼 여러 부처와의 논의를 통해 신중히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