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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교육을 말하다5]고산향교육공동체

‘마을이 학교다’는 가치 공유
시작은 삼우초 완성은 고산고
지역에 사는 것은 소중한 일

[완주신문]올해는 갑작스런 코로나19 감염위기로 대부분 학교는 못가는 날이 더 많았다. 반면 시골의 작은 학교 학생들은 매일 등교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차별화된 교육환경 등이 알려지며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얼마전까지 통폐합 위기를 겪어 오던 곳들이 새로운 학교 모델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십수년전부터 시골 학교와 교육의 혁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시도를 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 주도로 교육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혁신 교육이 실현된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침 지난 8월에 고산지역 학부모연합으로 이뤄진 고산향교육공동체 주최로 마을교육 아카데미가 열렸고 그간 교육 혁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이에 이를 정리해 소개한다./<편집자주>

 

 

■지역을 떠나게 만드는 교육
임경수 전 고산향교육공동체 대표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 청년들이 농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특히 완주군은 로컬푸드로 이름이 알려지자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완주를 찾았다. 그런데 마땅히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하는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도 없었고 청년들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도 없었다. 그래서 체험마을과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의 공간과 시설을 활용해 1년 과정의 청년학교를 4년간 운영했다.

 

당시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장이었던 임경수 전 대표는 청년학교를 두해 운영하고 도시에서 찾아오는 청년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 완주의 청년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에 세 번째 청년학교를 준비하면서 완주 관내의 고등학교 진학담당 선생님들에게 청년학교에 대한 안내장을 발송했다. 완주 관내 고등학생 중에 대학진학을 하지 않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지역을 떠나지 않고 생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안내장으로 상담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건도 없었다. 당시 고산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에 남는다는 것은 학교, 학부모, 학생 모두에게 창피한 일이었다.

 

임경수 전 대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상상을 하지 않았다. 완주의 관내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진로교육에는 농민이라는 직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로교육도 문제였다.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지역사회에 남지 않는다면, 지역에서 생활하고 공부한 아이들이 도시로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지역의 미래는 누구의 것일까. 로컬푸드로 지역경제를 순환하고 지역에너지 자립으로 자원을 순환하고자 하면서 사람은 비용을 들여가며 외부로 유출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삼우초에서 시작된 혁신
완주군의 농촌활력사업과 큰 연관이 없는 고산면 학교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계기를 마련한 것은 삼우초등학교였다. 삼우초는 원래 고산면 어우리에 위치한 고산서초등학교였는데 1999년 고산초등학교와 통폐합일 될 예정이었다. 농촌의 작은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또 다른 통폐합학교였던 고산면의 삼기초등학교와 통합을 통해 2003년 삼우초등학교가 됐다.

 

이어 혁신학교제도를 이용해 다양한 교육적 시도가 이뤄졌고 학교의 취지에 맞는 독특한 건물을 짓고 농촌의 소규모 학교의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이 언론에 소개됐고 모범사례로 교육계에 회자됐다. 삼우초의 도전이 알려지면서 전주를 비롯한 도시지역의 학부모들이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학교 인근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마을에는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들이 많아지게 됐다.

 

나영성 전 삼우초 교장은 “학교, 지역과 함께 학부모들과 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마을 안에서 아이들이 이미 자라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삼우초 교육철학에 대해 “(전에는) 진도를 맞춰 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했고 거기에 맞추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삼우초는) 진도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나를 충분히 하게 되면 그 다음에 훌쩍 자기 스스로 하게 된다. 교사가 자기 관점에서 열심히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 아이를 보고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반짝일 때 질문을 해주면 아이 스스로 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산향교육공동체 결성
이러한 배경으로 고산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 장기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주민워크숍에서 학부모를 중심으로 교육분과를 만들었고 삼우초등학교의 성과를 지역 전체로 파급하기 위해 교사, 학부모, 행정이 참여하는 고산향교육공동체를 조직했다. 고산향교육공동체를 준비하면서 실시한 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에서 70%이상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존중받는 학교문화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 학력수준의 향상이나 입시위주에서 벗어나 ‘마을이 학교다’라는 가치를 공유하게 됐다.

 

고산향교육공동체는 2012년 3월 고산면에 새로 부임하는 교사들과 지역의 학부모들이 상견례를 하는 ‘교사만남의 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산향 내부에는 고산향교사단 모임이 만들어지고 학부모 강좌를 주기적으로 했으며, 한국여성재단, 농어촌희망재단사업 등의 후원을 바탕으로 취약계층 청소년의 교육환경을 개선했다.

 

고산향은 지역의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청소년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지역 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초등학교 2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 특수학교 1개 간 교류가 증진됐으며 청소년, 학부모 모두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가지게 했다. 이전에는 고산지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고등학교는 전주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으나 고산중과 고산고로 진학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했다.

 

■풀뿌리교육지원센터 탄생
완주군은 오래전부터 타 지자체에 비해 다양한 청소년 관련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을 학교와 연계하고 있지 않아 효율적 운영이 이뤄지지 않았고 대상자가 중복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었다. 2013년 완주교육지원청은 지역교육의 혁신을 위해 ‘로컬에듀’ 정책을 기획했다. 이는 완주군의 교육예산을 교과과정 외에 방과후, 돌봄, 진로교육 등에 지원하고 학교예산은 오롯이 교과과정의 혁신에 투자하는 것이다. 2014년 12월 완주군과 완주군교육지원청은 창의적 교육특구 협약을 하게 되고, 두 기관 간 협의와 조정을 통해 2017년 ‘고산풀뿌리교육지원센터’가 만들어져 초등학교 2개와 중학교 1개의 방과후 학교 통합지원을 하게 됐다.

 

센터를 통한 방과후 학습이 타지역과 다른 점은 ‘마을에서 함께 키운다’는 것. 방과후학습 선생님들 대부분이 같은 마을 어른들이다. 그렇다보니 교육과 삶이 일치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일반 강사와 다르다. 보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같은 마을에 살기에 방과후 선생님과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도 관계가 이어진다. 이 때문에 선생님들의 책임감도 더 크다.

 

■고산고, 공립대안학교 전환
전북교육청은 정읍시의 1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농촌지역의 대안적 교육모델을 시도하기 위해 공립형 대안하교를 전환하는 공약을 추진하는데, 다른 지역의 불량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것을 우려해 해당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게 됐다. 고산향은 정읍에서 반대한다면 고산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전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교육청에서는 이를 받아들였다. 대안학교의 전환을 위해 고산고는 2017년 일반교사를 대상으로 교장을 공모했는데 학부모가 참여한 심사위원회에서 입시교육을 중시하지 않고 인성교육과 농촌에 맞는 다양한 진로탐색을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하고자 하는 교장을 선택했다. 고산고는 2018년 1학기부터 대안학교로서 일반고와 다른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장경덕 전 고산고 교장은 “인턴십이라고 했을 때 기능과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그 분의 삶을 배우자는 것이 취지다”며, “마을을 지키면서 지역에서 사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마을이 학교가 되고 삶의 터전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키워
이러한 지역분위기에 힘입어 새로 단장한 고산미소시장에는 청소년 공간이 만들어지고 지역출신의 청년이 청소년심리상담소를 열었으며, 문화예술 활동과 청소년 진로교육의 경험이 있는 귀촌한 청년이 완주군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청소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주말이면 동네 어귀에 마련한 컨테이너에서는 전주의 음악인들이 찾아와 청소년 밴드를 지도하고 있고 지역의 목수들은 부모와 함께 집짓기 학교를 열어 트리하우스를 만들고 있다.

 

임경수 전 대표는 “이렇게 고산면은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키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