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그간 필자는 몇 차례에 걸쳐서 완주·전주 통합과 관련하여 기고를 하고, 토론회까지 불려 나갔다.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다시 2013년과 같은 대립과 갈등이 재현될 조짐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진행되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고 답답하다. 왜 이 지경까지 몰고 가는 것일까. 자칫 그간 진행되어 왔던 완주·전주 상생사업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2013년 완주·전주 통합과정을 지켜본 필자는 대립과 갈등이 상당히 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통합무산으로 인한 대립과 갈등의 상처는 고스란히 완주군민의 몫이 되었고, 어처구니 없게도 전주시는 완주군에 교통체계 등에 일정한 보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 인해 완주군민의 고통은 가중됐다. 이러한 사정을 전주권에 있는 정치인들은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들도 전북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면 지난 2013년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상처가 또다시 재현되는 것을 막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먼저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완주·전
[완주신문]십여년 전 통합이 무산된 이후 완주군이 쇠퇴의 길을 걸어왔나? 완주군은 전북특별자치도 내에 있는 14개 시군 중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시’로 승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완주군은 전주보다 면적이 5배가 넓으며, 수소특화국가산단을 비롯한 여러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자체적으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고 미래도 밝다. 여기에 법원을 비롯한 공공기관과 의료원, 양질의 학교를 유치하여 정주요건만 제대로 갖춰지면 완주군은 전주시 다음가는 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통합을 찬성하는 이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어떻게 완주군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단정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여야 하는데 아쉬움이 크다. 또한 목포와 신안이 상생사업을 통해 통합을 준비하니 완주·전주도 당연히 통합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완주군은 지금껏 목포·신안과 같은 상생사업을 제대로 시행된 바 없었다. 민선 8기 때 겨우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목포·신안과 완주·전주 통합을 단순 비교해 여러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당연히 통합해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필자는 통합을 찬성하는
[완주신문]얼마 전 한 칼럼리스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2013년 완주·전주 통합의 실패요인은 완주지역 정치적 기득권 카르텔의 조직적인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고, 기득권 카르텔은 있지도 않은 공해폭탄, 세금폭탄, 재정폭단 등 3대 폭탄설을 날조해 통합을 무산시켰다는 것. 그 이후 완주와 전주가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목포와 신안은 2026년 7월1일 통합시를 목표로 두 지역의 상생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니 완주와 전주도 당연히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칼럼리스트가 지난 2013년 완주와 전주 통합실패 요인부터 제대로 분석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필자는 당시 완주·전주 통합 찬반투표 시 완주군 선거관리위원으로 있어 통합과정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통합 찬성 측은 완주군수를 중심으로 완주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을 벌였지만 반대 측은 민간을 중심으로 각종 사회단체의 협조로 활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 쪽이 우세했다. 필자도 개표 전까지도 완주와 전주가 통합되는 것으로 판단했고 개표에 참석했던 완주군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도 같은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개표 결과는 부결이었다. 이
[완주신문]129년 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이며, 최초의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이다. 동학농민혁명으로 불붙은 민족의식은 일제강점기의 3.1운동과 항일운동을 거쳐 오늘날의 5.18 민주화운동과 촛불항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역사학계의 통설에 따르면 1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3월 20일 무장 봉기)은 신분제 철폐와 같은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이었으며 2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9월 10일 전주 삼례 봉기)은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전(1894년 6월 21일)으로 침략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일 독립운동이었다고 말한다. 2004년에 제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정의)에서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란 1894년 3월 봉건체제를 개혁하기 위하여 1차로 봉기하고, 같은 해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 참여자’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전봉준, 손화중 등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이 현재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현 독립유공자법 적용 대상자(제4조)를 보면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