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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완주 정체성 담은 역사박물관 필요

[완주신문]지난해 여름 완주군민으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전주 국립박물관에서 진행된 특별전 ‘오로지 오롯한 고을, 완주’라는 특별전을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완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완주는 2000년 전에 만경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하이테크놀로지의 중심지였다. 이 특별전을 보기 전까지 완주는 전주의 위성도시 혹은 배후도시로 정체성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 꼬집어서 표현할 수 없지만 시골에 살고 있다는 열등감 같은 것도 있었다.  

 

책으로만 봤던 잔무늬 거울의 실물을 보며 0.3cm 간격으로 그려진 동심원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 전에 컴퍼스가 있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실제로 사용된 거푸집은 이 엄청난 유물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완주에서 생산된 물건임을 입증한다는 설명에 말 할 수 없는 자부심이 생겼다.

 

완주에는 청동기 유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운리 마한시대의 묘지와 초기철기시대의 주거유적에서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수계리의 장포와 신포에서는 만경강 유역에 살았던 마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풍부한 자료가 출토 되었다. 배매산성은 한성백제시기에 축조되었으며 백제유물 뿐만 아니라 가야계토기와 신라계토기도 발견되었다. 후백제 때 건설된 봉림사지의 발굴, 완주 동부 산악지역에서 발견되는 가야의 봉수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가깝게는 문집인 석은사고 등 필사본 3권을 남기신 삼례 석전 출신 석은 이병교 선생 생가에는 1톤 트럭 한 대분의 자료가 있다. 지난 1998년 봉동 둔산리에 과학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출토된 전주 류씨의 유품과 유물은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250점,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105점이 기탁되어 있다. 이것들은 지역 미시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봉상산업조합의 윤건중, 신창의거의 김춘배, 삼례소작쟁의를 이끌었던 이우성, 한성임시정부 전북대표 박한영 등 지역에서 치열한 삶을 사셨던 분들의 연구는 중앙에서는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연구하며 후대의 바른 교육을 위해서 완주역사박물관은 꼭 필요하다. 그럼 완주역사박물관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는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야 하겠다. 왜 완주역사박물관이 필요한지 주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해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박물관은 수익사업이 아니다. 한 번 만들어지면 수십 년 혹은 백년이상을 운영해야 한다. 수익이 없다면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동의이다.

 

두 번째는 현재 완주에 있는 자료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 작년 봉동 구미리에 답사를 간 적이 있었다. 구미리에 살고 있는 92세 이용기 어르신은 완주의 많은 비석의 탁본들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을 모으셨을 탁본인데 처음 보는 우리에게 주시면서 당신이 죽으면 자식들은 이런 것들의 가치를 몰라 다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석은 이병교 선생의 생가에 있는 자료들은 보존처리가 안 되어 있어서 종이들이 바스러지기 시작하고 있다. 현재 각 문중에서 혹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역사적 자료들이 무엇인지, 얼마나 있는지 서둘러서 조사를 진행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역사박물관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용역이 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인 큰 그림을 그려서 예산은 얼마가 필요하고 그 예산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역사박물관의 내용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역사박물관에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 박물관의 지향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겠다. 작년 완주역사박물관에 대한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좀 더 보완하고 대책을 만들어 추경에 다시 도전해 보면 좋겠다. 그래서 완주에도 완주의 정체성을 한 가득 담은 아름다운 역사박물관이 건립되었으면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먹고 살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역이 잘 살기 위한 삶의 목적이 문화향유 쪽으로 옮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의 문화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완주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자산과 역량이 높은 문화수준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주민들이 움직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