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프라하에는 열두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숙소에서 휠체어를 끌고 나섰던 지난 2015년 유라시아횡단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를 잠시 회상해본다. 그때 휠체어를 타고 따라나선 여정 대원의 어려움으로 이곳에서 귀국을 하려 했었던 아찔했던 일들이 머릿속으로 순간 스쳐갔다. 지금은 원정대장의 입장이 아니어서 조금은 여유있게 작업을 할 수 있다.
아침 토론에서 숙소 근처 작은 성당 건물에서 작업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짐을 꾸려 나선다. 나는 한지와 붓을 챙겼다. 유지환 작가는 더운 날씨에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의 두꺼운 외투를 걸친다. 성백, 홍라무 작가도 뒤를 따른다. 사진과 영상을 담당한 권영일, 배시아 작가는 무거운 장비를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신 바쁘다.
나는 성당 계단에 한지를 펼치고 우리의 여정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세계 평화 예술대장정 with Arts Bus’ 휘호를 써내려가고 홍라무와 유지환작가는 각각의 몸짓을 통해 평화를 얘기했다. 성백 원정대장은 갑작스런 비로 포기했던 탁본을 비가 그치자 기어히 작업을 하고서야 프라하를 떠난다.
프랑스 파리까지 가는 길은 중간중간 며칠의 쉬어감이 필요하다.
체코 남부 마리안시테리안느에 도착했다. 우리는 1박 후 에어컨 펜 밸트를 교체하고 떠날 계획으로 숙소를 나서 정비소로 향하던 중 드넓게 펼쳐진 밀밭 평원에서 잠시 쉬자며 차를 멈추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빨간 타올과 붓을 들고 뛰쳐나가 훌러덩 옷을 벗고 붓을 들어 자연과 교감하며 살향을 바람에 맡기며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을 취한다. 라무와 성백이 순차적으로 끼어들며 자연과 하나되는 작업 후 정비소로 향한다. 하지만 부품이 없어서 내일 오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고 내일 온다하고 되돌아선다.
여행은 순간순간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이렇게 에피소드를 만든다. 하지만 그 재미 아니던가? 우리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어제 묵었던 숙소로 향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위치한 숙소는 시골집을 손봐서 소일거리로 운영하는 시스템인데 저녁에 주인과 함께 작은 바베큐 파티를 후 어둠이 풍경을 먹어갈 즈음 잠을 청한다. 이곳에서는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노을이 깔린다.
다음날 찾아간 정비소 이번에는 부품이 맞질 않아서 또 하루를 기다려야 한단다. 어쩌랴, 정비를 제대로 하여 떠나기로 하고 하루를 더 머문다. 우연찮게 3박을 하고 난 다음 날에야 우린 고쳐진 버스에 올랐다. 여정은 이렇듯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을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우리는 파리로 가는 도중 스위스에서 1박을 하기로 하며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울창한 숲을 보고 잠시 멈추어 자연과 호흡하며 각자의 작업을 하기로 한다. 우리의 작업 열정에 고요한 숲은 금방 우리의 켄바스로 변했고 우리는 그 켄바스 안에서 흠뻑 젖고서야 마리안시테리안느와 이별을 고한다.
이렇게 체코를 떠나 스위스를 향해 우리는 또 밤을 달린다.
*심홍재 작가는
한국행위예술가협회장
서울 갤러리 아트프라자 전속작가
평화통일 대한민국 ‘동방으로부터’ 철도 횡단 프로젝트 여정 단장
제1회 부산항 국제퍼포먼스아트페스티벌 총괄 큐레이터 역임
다원예술축제 ‘수리수리, 전주’ 집행위원장
전주국제행위예술제 운영위원장
한국미술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