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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정체성 찾기16]초남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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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천주교 발상지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초남이성지는 ‘호남의 사도’라 불리는 복자 유항검의 생가터이다. 유항검은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권상언과 함께 호남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항검의 가족 중 8명(유항검, 권신희, 유중철, 이순이, 유문석, 유관검, 이육희, 유중성)이 순교하였고, 이중 5명(유항검, 유중철, 이순이, 유문석, 유중성)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시복이란 복자로 인정되었다는 뜻으로 성인이 되기 전 단계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이 되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먼저 청원인이 대상자를 성인으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한다. 신청서가 접수된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호칭과 함께 가경자라고 부른다. 이후 심사를 거쳐 교황의 권한으로 복자가 되고 시성 심사를 거쳐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복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3인의 성인이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을 비롯한 124위의 복자가 있다. 성인은 전세계가톨릭 교회에서 축일로 기념하고 복자는 지역의 교구, 단체 등에서 축일을 기념한다.

 

초남이성지는 천주교 역사에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초남이는 복자 유항검이 태어난 곳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동정부부인 유중철과 이순이가 살았던 곳이며, 전라도에 세워진 최초의 교리당이 있는 곳이다. 현재 교리당에는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현, 윤지헌의 유해가 모셔져 있으며 세 분의 유해가 발굴된 바우배기가 지근 거리에 있다.

 

동정부부 유중철과 이순이
초남이의 교리당은 유항검의 사랑채가 있던 곳으로 유항검의 초청으로 전라도에 온 주문모 신부가 호남에서 처음으로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고 강론(설교)을 한 곳이다.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최초의 외국인 신부로 우리나라에서 순교하였다. 주문모 신부가 이곳에 있는 동안 유항검의 아들인 유중철은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성찬)를 하였다. 영성체하면서 유중철은 ‘동정 생활을 하겠다’라는 결심을 주문모 신부와 부친에게 고백하였다.

 

2년 뒤에는 한양에 살던 이순이가 동정을 지키도록 도와달라고 주문모 신부에게 요청한다. 여성이 동정을 지키겠다는 것은 수녀가 되겠다는 의미인데 당시 조선의 상황은 처녀가 나이가 들도록 결혼 안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였다. 나이 든 노처녀를 찾아내어 결혼을 시키는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고, 결혼한다면 부부생활은 당연하였다.

 

주문모 신부는 동정서원을 한 전주에 사는 유중철과 서울에 사는 왕족인 이순이의 혼인을 주선한다. 혼례를 올린 유중철과 이순이는 함께 동정 서약을 하고 일생을 오누이처럼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부모님께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정부부가 탄생하였다. 신실한 믿음이 있는 부모였기에 이런 서약이 용납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유중철은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할 장남이었으니 일반 사대부 가문에서는 결코 허락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결혼은 하였지만,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동정을 지킨 부부를 동정부부라고 한다. 유중철과 이순이 외에도 동정부부는 여럿 있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동정부부가 조선에만 있었던 이유는 당시 조선의 상황이 만든 결과였다. 신앙의 자유가 없고,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수도원이나 수녀원은 아예 건립할 수 없었다. 반면에 신앙을 받아들인 신자 중에는 동정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결국 이들의 선택은 결혼해서 동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새롭게 백년가약을 맺은 동정부부도 있었지만 부부로 함께 살다가 동정부부로 살기를 결심하는 부부들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동정부부라는 제도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초남이 성지이다.

 

우리나라 최초 순교자
현재 초남이의 교리당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언, 윤지헌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윤지충은 유항검과 이종(이모 아들)사촌이고 권상언은 외종(외삼촌 아들)사촌이다. 윤지헌은 윤지충의 동생으로 형이 순교한 후 가족들을 데리고 현재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로 이주해 살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다. 윤지충, 유항검, 권상언 모두 한 집안이다. 윤지충의 고종사촌이 정약종이고 정약종의 매부가 이승훈이다. 정약종은 정약용의 셋째 형으로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같이 순교한 이승훈은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로 세례명은 베드로인데, 그는 세례명처럼 한국 천주교회의 든든한 반석이다.

 

윤지충과 권상언이 전동성당에서 순교한 후 아마도 유항검이 이들의 시신을 수습해 자신의 소유지에 묻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세 사람의 유해는 유항검의 가족묘가 있었던 바우배기 성역화 과정에서 발굴되었는데, 함께 출토된 백자 사발지석에서 순교자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이곳 교리당에 안장하였다.

 

이 순교자들의 백자 사발지석을 쓴 사람이 정약용이라는 주장이 나왔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정민 교수는 다산을 연구해 온 전문가이다. 정민교수는 정약용의 필체와 백자사발 지석을 비교 분석한 결과 정약용의 필체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다산 정약용과 윤지충은 고종사촌이고, 다산에게 서학을 전한 사람이 윤지충이었기에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이 부분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어 결론이 나온다면 완주 초남이 성지는 특별함을 하나 더 갖게 될 것이다.

 

완주 성지순례
완주 초남이에서는 한국의 초대 가톨릭 역사의 핵심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한 집안에 한 명의 순교자만 있어도 영광인데 유항검의 집안엔 도대체 몇 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것인지 너무나 놀랍다. 더구나 남 부러운 것이 없는 부자이고 양반이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이 보장되었음에도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이 존경스럽다. 순교자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도전을 주지만 유항검 일가의 이야기는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이 심오하기만 하다. 

 

초남이 외에도 완주에는 한국 천주교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성지인 천호성지가 있다. 이곳 초남이가 유명인의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라면 천호성지는 이름 없는 순교자를 모시고 있는 곳이라 더 특별하다. 

 

초남이 성지는 전동성당, 숲정이, 치명자산과 연계하고 천호성지는 여산, 나바위성당과 연계한 성지순례 코스를 만들어서 운영해야 한다. 완주의 성지순례 여행은 조용히 사색하며 치열하게 살다 가신 분들의 삶을 되새기는 여행으로 코로나와 함께 살아야 할 현대인들에게 치유와 위로의 공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