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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헌수 시인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간결한 시어로 조율해낸 연민과 위로의 시편들
일상의 틈새에서 피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언어

[완주신문]봉동읍 둔산리에 사는 김헌수 시인의 첫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가 지난달 말 발행됐다.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헌수 시인의 시는 대상의 이면과 그림자까지 관찰하며 사려 깊은 내면을 밀도 깊게 그려놓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시는 간결한 시어의 조율과 안정된 이미지의 구도를 통해 삶에 대한 연민과 슬픔의 정서를 한층 두텁게 형상화한다. 완주군립둔산영어도서관에서 상주작가로 근무하는 김헌수 시인을 만나봤다.

 

 

▲ 지난달말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를 발행했다. 시집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 살다보면 자기 말을 하지 못하고 여러 표현 뒤에서 관조하듯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생각을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12월과 1월 사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다. 이 시를 쓰게 된 사연과 무엇을 담았는지?
- 12월과 1월 사이는 한해가 끝나고 새로운 일년이 시작되는 교차점이다. 끝과 동시에 시작인 시점이다. ‘전환’, ‘새로운 시도’로 표현될 수 있는 시점에서 가장 외치고 싶은 말이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다. 각자 대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감정이 다양한데, 이를 한가지로 강요받지 않고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

 

그래 드러내지 않을게/졸피뎀을 털어 넣고/기쁜 사진을 찍어볼게/프레임의 각을 맞추고/밀실에서/감도를 높일 때/움직이다가 적막해지는/멈추었다가 다시 처음 바라보는/기다란 액자와 삼각대/무지개 색 양산을 들고/접사렌즈를 들고서/캐논 필름을 만지던 사람이/암실로 들어갔다고/피사체를 따라가며 고정되었던 우리/경험이 녹아 든 욕설을 주문처럼 외웠던 우리/노출을 말하고/플래시를 터뜨리며 찍은/오래 전 사진 한 장/건너편에 켜진 푸른 등을 향해 질주하는/시선이 마구 뒤섞였던 십년 전 우리,/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 이번에 발행한 시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시와 그 이유는?
- 시집 가장 첫 번째에 있는 ‘유월 하늘에 뜨는 별은’을 먼저 추천하고 싶다. 시를 쓰는 것 외에도 펜 드로잉도 함께하고 있다. 글과 그림 모두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한다. 인간과 대상, 환경과의 관계를 이미지화 하는 작업이다. 그런 과정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유월 하늘에 뜨는 별은’이다. 이외에도 ‘살바도르 달리에게’, ‘바탕체로 읽는 하루’, ‘당신은 문장의 통로를 지나가고’도 같은 이유로 추천하고 싶다.

 

 

▲ 2018년 ‘삼례터미널’이라는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어떤 시인가?
- 아버지에 대한 시다. 완주 옆 전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님과 전주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고 삼례로 터를 옮겼다. 아버지가 삼례로 오신이후로 터미널에서 자주 술을 드셨다. 석양과 함께 쓸쓸히 술을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삼례터미널과 겹친다.

 

빗물 고여 팔랑이는 흙바닥 길에 숨통을 터놓고 바퀴자국 훑고 간 자리에 안부를 걸쳐 놓는다 이때 삼례터미널은 빈집 같다 버스들은 벚꽃 잎들을 헤아리며 종점 없는 마을로 떠날 것 같다/내 안에 새겨진 주름 패인 얼굴을 현상해 놓고 흑백사진 같은 터미널 지나 후정리 길목에서 손 흔들던 그의 모습을 던져주고 간다/걸어 잠근 뒷문 곁에 그림자 없는 하루가 눕는다 들마루에 앉아서 나누던 습관들이 헐렁해졌다 가끔 자리를 내어주는 그곳, 떨어지는 너그러운 빗방울이 욕심을 내던 처마 밑이 환하다/녹이 슨 남자가 떠난다 그를 엿보는 눈빛 덕분에 말은 쌓여가고, 버스가 지나간 자리에 희미하게 고요가 들어앉았다 나도 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다음 날이면 또 들어와 앉는 터미널에서 그를 만지고 있다/삼례터미널은 빠져나갈 수 없는 출구다 살아온 지난날이 자동판매기 속에서 낡아가고 있다 쓸어내린 눈꺼풀을 길들이는 감각들, 아무도 몰래 음각해 놓은 문양으로 피어 목판화를 찍어내고 있다

 

또한 우석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며 지나던 곳이기도 하다. 삼례터미널은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과 학창시설 추억이 버무려진 장소다. 이를 시로 표현했다. 

 

▲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등으로 세상이 더욱 뒤숭숭하다. 그럴수록 사람들이 시를 읽고 사색할 여력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시집까지 발행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나? 
- 시는 삶의 숨구멍이다. 어릴 적부터 평소 글을 써오다 2010년 ‘전북여성 백일장’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그곳 수상자들의 모임인 ‘글벗동인’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대부분 글쟁이들처럼 신춘문예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2014년 문예지 ‘한국문학예술’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그 뒤로 대학원에 진학해 문예창작을 더 깊이 공부하게 됐고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그간 삶 전체가 글쓰기에 젖어 있었다. 생활과 함께 써온 시들을 모아서 이번에 시집을 발행했기에 어떤 힘이 있었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특히, 지난 2006년 둘째 아이를 일찍 보낸 상처 속에서 일상생활을 가능케 한 것이 글쓰기다. 시를 쓰며 숨을 쉴 수 있었고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 시집에 실린 ‘그해 봄에는’이 둘째 아이에 대한 시다.

 

말없이 흐르는 금강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고요한 두근거림으로 흘러가는 금강을 말입니다 그와 내가 나눈 입맞춤은 아직도 금강 어귀에 스릉스릉 스며들고 있을 것입니다 꽃샘추위가 지나간 초봄에 그와 나눈 말이 새겨졌고 날리는 눈발을 둘이 맞았습니다 작년에 하늘로 돌아간 아이의 눈망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슬프다고 했지만 그는 마땅한 슬픔을 찾지 못하고 길을 나섭니다 다시 봄이 오고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금강의 눈발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와 그 사이에 새떼가 흘리고 간 울음을 주워봅니다 금강에서 사라져버린 시간을 홀로 두기로 했던 약속이 흐릅니다 누구도 낯설지 않은 금강에 있을 것입니다

 

 

▲ 현재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에 살고 있다. 이곳에 정착한 배경은?
- 여동생이 먼저 이곳에 살고 있었다. 여동생 때문에 자주 오게 됐고 둔산공원 등 주민 복지시설이 잘 돼 있어서 2005년에 이사를 와 15년째 살고 있다. 완주를 ‘으뜸도시’라고 하는 것처럼 주민들에게 혜택이 많아 굉장히 살기 좋은 곳이다.
특히 도서관에서 상주작가로 근무하며, 주민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아쉽게도 이런 것을 잘 모르는 분이 많아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현재 성인들을 대상으로 시와 펜 드로잉 수업을 하고 있고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동시’ 수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