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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코로나가 일깨운 실존적 상황

[완주신문]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살아야만 할 필연적 이유가 있을까?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한번쯤 던져 봄직한 질문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죽음을 경험할 수 없지만, 아무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없을 때 불쑥 올라오는 감정이 부조리다. 카뮈에 따르면 인간이란 우연히 내던져진 존재로 이 순간 여기에 머물만한 어떤 필연성은 없다. 다만 이 부조리를 인식하더라도 삶을 멈추지 않고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 

 

‘페스트’는 오랑시를 배경으로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의 모습을 그려낸 알베르트 카뮈의 작품이다. 평소 오랑시 사람들은 전형적인 소비사회 인간형으로 오랫동안 유지해온 관습을 지키며 공고한 일상을 권태롭게 산다. 그런데 이 도시에 페스트가 발병했고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게 도시민의 삶을 무너뜨린다. 병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많은 사상자를 내자, 전염을 막기 위해 도시를 폐쇄했다. 의도치 않는 생이별과 고립감은 사람들을 슬픔과 불안 속으로 밀어 넣었고 사회내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 이른다. 페스트적 위기는 다양한 반응들을 끌어낸다. 공포에 눌려 스스로 자멸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이를 신의 심판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이를 기회로 더 큰 재화를 생산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주인공 리유를 비롯한 몇몇 사람은 페스트적 환경을 실존적 상황으로 간주하고 담담하게 대응한다. 

 

치사율이 높지는 않지만 페스트에 버금가는 전염력을 지닌 코로나19가 세계 곳곳에 발병했다. 우리나라도 확진자가 수천명을 넘어섰다. 가족단위로 전염되기도 하고 종교 집단 같은 단체 활동이나 타인의 병을 치료해주다가 감염되기도 했다. 회복한 사람도 있지만 유명을 달리한 이도 있다. 아직까지 상태가 미미하기는 하지만 전북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완주군 공무원들은 정부가 내린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이라는 방침에 따라 다중밀집장소 종교나 문화시설 이용 자제를 촉구하는 등 방어망 구축에 힘쓰고 있다. 사태가 심각한 지역과의 교류 차단을 고려하기도 하고 특정 국가와 도시를 기피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사람들의 최대 과제는 코로나로부터 도피다. 전염병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은 자기 생명줄을 붙잡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다. 바이러스를 막아줄 마스크와 손세정제에 더해 생필품 사재기는 물론이고 사람들 간에 관계까지 단절한다. 특정 종교계는 이 상황을 신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며 더 순수한 신심을 요구한다. 또 어떤 사람은 불안과 공포를 팔아 잇속을 챙긴다. 반대로 일상적 소비활동이 멈추는 바람에 경제 흐름이 끊겨 생계형 위기를 맞는 사람들도 있다. 한술 더 떠 전염병 사태를 정치로 악용하는 집단도 있다. 이들은 코로나 확산을 상호 무책임으로 밀어붙이며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발언을 일삼기도 한다. 불안은 존재의 정당성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를 나돌며 코로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관계를 이간질 시킨다. 너무나 간단하게 우리 삶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예견한 카뮈는 우리에게 실존적 상황을 직시하라고 조언한다. 누구도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지만, 이로 인해 혼란에 휩싸이는 것은 안 된다. 사회 내 만연한 불신과 공포로부터 벗어나야만 전염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카뮈의 의사 리유는 페스트 속에서 사람을 모아 보건대를 꾸린다. 이는 만연한 불신 해소와 공감능력을 회복하여 사람들 사이에 연대감을 강화했다. 대원들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 불행한 상황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자에 대한 치료를 멈추지 않는다. 나날이 세력을 키워나가는 페스트에 맞서 죽을힘을 다하는 리유에게 동료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묻자, 그는 ‘살아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페스트 상황이 두렵고 또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의사로서 책무를 다하겠다는 말이다. 그는 부조리하지만 이것이 자신이 처한 실존적 상황임을 긍정한다.

 

우리 삶 속에서 한순간도 위험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사고, 돼지 열병과 조류독감이 있었고 또 몇 해 전에는 메르스와 사스 때문에도 곤란을 겪기도 했다.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 질서 정연한 세계를 꾸려나가길 원하지만 삶은 언제나 통제 불가능한 우연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리유의 말마따나 삶은 원래 부조리한 것이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를 맞아 우리가 취할 태도는 리유처럼 묵묵하게 자기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불안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이것들은 우리를 더 옥죌 것이다. 차라리 현재 주어진 실존적 상황을 담담하게 맞서며 평소대로 일상을 이어 나가는 게 어떨까?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