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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딜레마 프레임에 갇힌 21대 총선

[완주신문]21대 총선을 앞두고 완주지역 출마 후보자들 간에 경합이 치열하다. 이들을 둘러싼 유권자들의 논쟁 또한 뜨겁다. 이렇게 후보자 선택을 앞두고 발생하는 지역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민주주의적 의사표명의 결과로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그런데 관점디자이너들은 이 대결 구도를 ‘소지역주의’와 ‘인물론’이라는 딜레마 프레임으로 유형화 시켰다. 이 관점은 유권자의 의무와 권리를 은폐한다. 후보자 선택에서 진짜 중요한 문제는 ‘누가 정의로운 통치자인가’에 대한 고려지만, 왜곡된 프레임 때문에 유권자들의 판단력에 혼란이 생겼다.

 

딜레마 프레임에 입각하면 소지역주의자들은 자기 지역출신을 뽑아야 믿을만하다고 확신한다. 반면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해당 지역에서 그 인물이 이룩한 치적만을 앞세운다. 이 논리대로라면 유권자들은 한편으로는 ‘누가 자기 지역에 이익이 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이 없는 것’을 우려해야하는 상황이다. 결국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에 도취되어 어떤 후보를 선택하더라도 절반의 만족밖에 건질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 관점에 따를 경우 완주군민들은 올바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선의지가 결여됐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객관적 자료를 통해 어떤 후보자가 더 훌륭한 사람인지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 일부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에 영합하는 정치인 모색에 더 큰 관심을 두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옮음’을 무시한 딜레마 프레임 구성자들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로 행복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인간은 혼자서 이를 추구하기 보다는 타인과 함께 하기를 원하다. 연대할 때 더 쉽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하고, 그런 삶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타인과 더불어 살려면 다양한 이해(利害) 집단들의 통합체로서 국가를 이루어야한다. 또 이를 합리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한데, 여기서 핵심은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통한 통치다. 즉 정치 행위가 합법적이어야 하고, 이것의 최종 목표는 공공선이어야 한다.

 

그가 보기에 국가는 가장 완전한 조직체인데, 인간은 본성상 정치 행위를 통해서만 ‘최상의 선’에 도달할 수 있다. 최상의 선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좋은 삶, 혹은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정의로운 정치행위의 일종이다. 이 의미에서 ‘정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합의할 수 있고, 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 자신도 최고의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점에서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인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에서 보면 현재 완주군민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최상의 선’을 추구하는 중이다. 그들은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동선을 행할지, 비판적 합리성에 입각한 정치 행위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점디자이너들은 이 건전한 활동을 딜레마 프레임으로 단순화시켜 완주군민의 정치적 행위 자체를 폄하한다. 안타깝게도 이미 이 딜레마 프레임에 걸려 든 수많은 군민들은 정치적 본성을 잃고서 정의로운 유권자의 권리를 자기 이익과 맞바꾸려 하고 있다.

 

이렇게 관점디자이너들은 소지역주의와 인물론 프레임을 통해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조차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성찰을 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 우선 딜레마 프레임에 노출된 소지역 출신 후보자들은 당선이 되더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경사에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무관한 지역주민들의 은혜가 작용했을지 모른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압박감은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과 생명력을 보장받기 위해서 부정의한 행위도 불사하도록 이끌 것이다. 다른 한편 타 지역 출신 당선자는 자신의 신념을 떠나서 지역 유권자의 입맛에 맞는 정치를 해야만 하는 필연적 의무를 지닌다. 그래야만 정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딜레마 프레임에 갇힌 유권자들 역시 공적 정의가 아니라 자기 이익 추구에 급급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결국 옳은 정치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럴싸한 관념을 덧씌우더라도, 이것은 결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정의로운 길이 아니다. 유권자들과 후보자들의 정치적 본성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후보자들은 출마에 앞서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에 관해 자문해야 한다. 또 유권자들은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정치인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려해야한다. 이밖에 장기적 관점에서 옳음이 무엇이며, 모두 함께 잘사는 길은 어떤 것인지, 왜 부정의가 발생하는가에 대해서도 성찰해야한다. 이런 고민을 거친 뒤에야 정의로운 대표를 선출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