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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많은 시련과 누군가 희생 필요

[완주신문]옥천신문 목요일 마감을 하고 있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밤 12시를 향해가는 마감시간은 사실 한주가 하루 같을 정도로 후다닥 지나갑니다.

 

한 주 동안 수많은 제보와 취재 요청, 알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한해 오천억원 가량의 예산을 쓸 수 있는 옥천군과 이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군의회, 경찰서, 교육지원청 등 각각의 공공기관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제보가 들어옵니다. 대판 24면, 타블로이드 56면 등 모두 80면을 매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옥천신문은 지역신문의 맏형 격으로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군민주 신문을 만든 이래 벌써 서른살이 훌쩍 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시련과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10명의 취재기자와 19명의 상근 구성원들이 옥천신문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5만명의 인구, 2만 가구에서 월 1만원짜리 주간지 3천500부에 달하는 유가부수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구수에 비해 20%의 점유율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매 기사마다 ‘단독’이고 ‘특종’이라 이를 굳이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나고 자란 고향은 아니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이 옥천에 뿌리 내리며 옥천을 고향처럼 생각하면서 매주 발로 뛰며 땀내나는 글들을 하나둘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참고 참다가 억누르고 억누르다가 마지막에 신문사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옥천이 아닌, 보은과 영동, 대전에서 만나 긴한 내부 고발을 하기도 합니다. 멀리 서울의 언론, 멀리 도시의 언론은 멀다는 이유로 안 온지 오래이고 길가다 숱하게 마주치는 옥천신문 기자에게 이물없이 제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게 참 좋습니다.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잔뜩 헝클어진 지역농촌에서 누군가를 비판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판적 사고가 거세된 공동체는 참 무섭습니다. 지역의 공공성을 지켜내지 못한 공동체는 이미 공동체가 아니라 지옥이겠지요. 옥천신문이란 공론장이 없다면 지역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군의회 방청석에서 옥천신문 기자 혼자 타이핑을 하며 군의원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담아 분석해 기사를 씁니다. 기자 한명이 있기 때문에 의회 의원들은 긴장을 하고 질의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많은 주민들에게 알려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지방자치,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지만, 사실 건강한 풀뿌리 언론 없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가짜입니다. 또 하나의 철옹성처럼 지역 유지들의 각축장이 되겠지요. 투표소에서 1초짜리 투표를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끊임없이 권력을 감시, 견제, 비판하는 공론장인 풀뿌리 언론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뭘 알아야 참여도 하고 목소리를 낼 거 아니겠습니까. 옥천신문은 그 동안 옥천 주민들이 많은 거름과 충분한 물을 주어서 그나마 이만큼 튼실하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언론들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1-2명의 취재기자와 3-4명의 직원들로 매주매주 힘겹게 신문사 살림살이를 꾸려가고 있는 거 압니다. 이미 경험을 하고 어려움을 겪었기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더 낮은 곳으로 더 약한 사람에게 한없이 다가가 목소리를 듣는다면, 말 없는 자들의 말, 글 모르는 사람들의 글이 될 수 있다면 지역신문은 충분한 존재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언론을 흔히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는데 지역언론, 즉 공동체 저널리즘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삶입니다. 삶터라는 장소성의 역사를 터무니있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매주 지역의 역사를 주민들과 함께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명감으로 일을 하면 좋겠습니다.

 

옥천에서도 가까운 전북 완주에서 이제 곧 종이신문이 나온다고 합니다. 참 기쁜 소식입니다. 열렬하게 응원하고 함께 할 것입니다.

 

이 땅에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기 전에 지역신문이 주민들의 염원으로 들불처럼 전국 방방골골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0여년 지역신문 역사에서 지역은 ‘지역소멸’이란 키워드로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역, 누가 지키고 기록하겠습니까.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가장 낮은 곳의 약한 사람과 함께 할 지역신문은 과연 어디입니까? 새롭게 태어나는 완주신문의 힘찬 출발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