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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산책]유리마을 골목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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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신문]마을 골목에는 지나온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다. 그렇기 때문에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 마을 특징을 이해하게 된다. 삼례 하리 구와리 유리마을에 관해서 알아보기 위해 걷기 좋은 날 사부작사부작 여유를 가지고 걸어보았다. 

 

마을 골목 답사는 하리 용전마을에 있는 하리교회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용전마을 남쪽으로 만경강 제방이 있어 물이 그쪽으로 흐르지만, 예전에는 만경강 물길이 두 개로 나누어져 하리를 남북으로 감싸고 흘렀다. 당시에 하리는 강으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남쪽으로 흐르는 물을 앞내라고 부르고, 북쪽으로 지나는 물길을 뒷내라고 불렀다. 하중도에서는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잘 자라는데 하리교회 옆에도 수령이 300년 된 버드나무 노거수가 있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위풍이 당당하다. 섬의 흔적은 대부분 지워졌지만 버드나무만큼은 그대로 남아 마을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버드나무 노거수 앞에는 임광호 전도사 순교자 기념비가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과의 갈등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기념비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버드나무 노거수를 뒤로하고 구와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얼마쯤 지나면 물길을 건너게 된다. 예전에 뒷내라고 불렀던 물길이다. 지금은 작은 하천으로 남았다. 이 하천을 주민들은 둔내라고 부른다. 뒷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둔내로 변했다. 둔내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전와마을이 나온다. 왼쪽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와 정려각이 있다. 몇 발자국 떨어져 정려각 2기가 또 있다. 그곳에도 또 한 그루 팽나무가 있었는데 2019년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금 남아있는 팽나무보다 더 큰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였는데 지금은 볼 수 없어 아쉽다. 이 팽나무는 서낭당 나무였다. 서낭은 마을지킴이로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당을 짓기 어려운 입지 조건일 때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서낭으로 삼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어쩌면 가난했던 전와마을도 사당을 지을 형편이 안 되어 마을 입구에 있는 이 커다란 팽나무를 서낭으로 모셨을지도 모른다. 정려각 안에는 효자, 열녀 비석과 현판이 있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산물이다.

 

정려각을 지나 마을 길을 따라 나아간다. 구와리는 들판을 가로질러 길게 늘어서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가운데 마을을 기준으로 앞쪽 마을을 전와마을이라 부르고 뒤쪽 마을은 자연스럽게 후와마을이 되었다. 전와마을을 지나 도로를 건너면 와리마을이다. 골목길 집 앞에는 국화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꽃향기가 골목 안에 가득하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느티나무 고목이 보인다. 그 옆에는 빛바랜 정자가 놓여 있다. 정자 현판에 새겨진 괴정(槐亭)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몸은 늙어도 정신만은 또렷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이 정자는 유학자인 괴정 이창신이 세운 정자이다.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괴정 선생이 아이들 가르치는 장소였다. 정자 바로 옆에는 일제강점기 때 구와리 소작쟁의를 주도했던 독립유공자 이우성 선생 집이 있다. 당시 소작쟁의는 단순한 농민운동을 넘어 항일운동 성격이 강했다. 이우성 선생은 괴정의 동생이면서 동학교도였던 이현신의 아들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지금 이 집에는 이우성 선생의 며느리가 살고 있다. 

 

 

괴정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 유리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마을 안쪽에는 신와교회가 있다. 마당에 서 있는 종탑이 향수를 자극한다. 어릴 적 보았던 교회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골목길은 마을을 빠져나와 들판을 가로지른다. 들판과 접하고 있는 지점에 또 하나 모정이 있다. 이 모정은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면서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이다. 

 

들판으로 들어서면 앞에서 만났던 둔내를 다시 만난다. 둔내는 유리마을 입구까지 길을 안내해 주고 다시 멀어진다. 유리마을은 버들 류(柳)자를 쓰는 류 씨 집성촌이기도 하지만, 본래 버드나무가 많았던 곳이라고 해서 마을 이름이 유리(柳里)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입구에는 공동 빨래터가 있다.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면 매우 이색적인 모습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바로 강 돌을 쌓아 만든 자연석 담이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마을 어른들이 손수레로 마을 앞 만경강에서 강 돌을 실어와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이 현대화되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제 역할을 감당하는 돌담이 남아 있다는 것은 유리마을의 큰 자랑거리이다.  

 

 

유리 마을을 지나 만경강 제방으로 가는 길 주변으로 비닐하우스가 길게 늘어서 있다. 삼례의 특산물로 자리 잡은 딸기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다. 열린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벌써 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만경강 제방 도로에 오르면 신천습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신천습지는 회포대교부터 하리교 사이 구간 습지를 말한다. 신천습지 중간에 있는 신천보에는 겨울철새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는지 새들이 많이 보인다. 신천보 부근으로 내려가면 자전거도로를 이용해서 강변을 걸을 수 있다. 신천보를 지나 하리교 가까이 가면서 억새 풍경도 보인다. 예부터 유명한 만경강 노전백리(蘆田百里) 풍경을 보면서 이번 마을 골목 답사를 마무리했다. 만경강 제방 도로 위로 오르면 처음 걷기를 시작했던 하리교회가 가까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