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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일상]이웃의 손길

1950년대 6.25 전후 천수답이 대부분인 농어촌은 거듭 되는 흉년으로 쌀 한 톨은 금싸라기와도 같았다. 먹을 것이 바닥이 난 사람들은 죽을 것 같은 배 고품에 들로 산으로 먹을 만한 풀뿌리를 찾아서 헤매었고 꽃잎이 떨어지지도 않은 꼿꼿한 벼이삭을 안개처럼 몰려오는 참새 떼가 빨아먹으면 그 이삭은 수확을 못하는 쭉정이가 되어 말라버리니 누가 시키기도 전에 나는 새 떼를 쫒으려고 장대를 들고 논으로 달려가야 했었다. 그런 나의 발걸음은 호랑이를 피해야하는 강아지 처지가 되어야했다. 논 입구 집에 사는 서너 살 위인 친구가 어김없이 나타나 '야 임 마 새 쫒으러 왔어'라고 말을 거는 친구는 골리앗 같았고 바들거리는 이스라엘 졸개가 되는 나였다.

 

줄 행낭 치고 싶었지만 배 고품은 죽음과 같았기에 참아야했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땐 나를 쫒아 다니며 내 이름을 불러 대는 친구가 보기 싫어 학교를 그만 둘까 수없이 고민을 했었다. 2학기 때 입학을 하여서 친구들과 하나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3학년 때 한 친구의 어머니가 찾아왔고 나는 아버지를 모셔 와야 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별로 힘들게 한 일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나로 인하여 부담을 받았고 전몰 미망인인 그 어머니가 달려온 것이다. 훈계를 받은 가해자 입장에선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행동도 피해자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우쭐 한 생각이 갑 질인 것도 깨닫지 못하는 꼬맹이에 불과했었다.

 

세상의 생명체들은 어미가 새끼를 먹이고 키우려는 몬든 행동이 산교육이 되어 새끼가 성체가 되고 새끼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배운 대로 새끼를 기르는 것이고 늙은 어미를 돌보아 줄 구조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태어난 동물들이지만 인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태초부터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고 책임지는 것이 사람의 전통이고 미풍이고 계명인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사랑과 정이 하나가 된 삶이라 희망도 행복도 있는 것이다.  

 

짐승은 몸 하나만 생각하고 먹이를 구하며 살아가는 노하우를 가르쳐 주면 끝이지만 인간은 부모를 섬기고 받들며 순종할 때 후손들은 자연스러운 산교육이 되고 또한 그들도 후손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섬김을 받게 되고 또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이웃과 손잡지 않고는 살아갈 수는 없는 게 인간의 세계다. 의식주와 건강과 문화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이웃과 손잡아 주고받고 협력해야 살아갈 수 있는데도 코 앞 만 보는 요즘 사람들은 힘들고 얽매이기 싫다고 결혼과 가정을 피하고 자녀를 낳지 않으려하니 그것은 계명과 순리를 역행하는 종말인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은 낳고 기르기 때문에 역사가 이어지는 것인데 그 자체를 인위적으로 단절한다면 신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고 씨 뿌리지 않고 추수하려는 격이다. 흐름에 맡겨 편안한 노후를 꿈꾸고 빨 줄만 알고 내 놓을 줄 모른다면 언제나 청춘일 수는 없는 것이다. 머지않아 찬바람 눈보라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 온다는 것을 깨닫고 이웃과 손잡을 때 내일은 언제나 파란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