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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전기 없는 반도체는 신기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한 지역 갈등을 넘어 국가 산업 전략의 본질을 묻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전 없이 정상 추진”을 주장한 데 대해 안호영 국회의원이 이를 “수도권 이기주의의 전형”이라고 비판한 것은 과격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을 직시하라는 경고에 가깝다.

 

반도체 산업은 전기를 먹고 자라는 산업이다. 안정적이고 대규모의 전력 공급 없이는 단 한 기의 팹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 대책 없이 수도권에 반도체 산업을 계속 밀어넣어 온 결과는 어떠한가. 전국 곳곳에서 송전탑 갈등이 폭발하고, 전력망 붕괴 위험이 상시화되며, ‘에너지 내란’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과연 ‘정상 추진’인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안정이라는 주장은 현실을 거꾸로 본 것이다. 불확실성은 이전이 아니라, 전기가 없는 산업단지 자체에 있다. 전력 공급이 불가능한 곳에 투자를 강행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 공급망과 산업 안전을 동시에 위협하는 결정이다. 반도체 산업의 최대 리스크는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물리적 한계다.

 

더구나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어느 한 정부의 공로로 포장될 사안도 아니다. 2단계 사업은 윤석열 정부가 전력 대책 없이 밀어붙인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고, 1단계 SK하이닉스 클러스터 역시 문재인 정부 시절 수도권 일극 산업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남아 있다. 과거의 성과를 ‘역작’으로 미화하며 현재의 구조적 위기를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SK하이닉스를 유치했던 경험을 두고 “지금은 왜 그랬는지 생각이 든다”고 언급한 것은 결코 우연한 발언이 아니다. 이는 수도권 집중 산업정책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정치적 성찰이며, 에너지 대전환과 지방 주도 성장이라는 새로운 국정 기조의 출발점이다. 이 흐름을 외면한 채 과거의 논리를 되풀이하는 것은 대통령의 국정 방향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전기가 흐르는 곳으로 산업이 가야 한다. 반도체 산업을 살리고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며,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이 불가피하다. 이는 특정 지역의 손익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문제다.

 

수도권의 이익을 지키는 정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반도체 산업과 새로운 국가 성장 전략은 더 이상 용인에 머물 수 없다. 답은 지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