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엄숙하고 과묵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 직업군이 있다. 특히 성직자는 그중 으뜸일 것이다. 하지만 유난히 흥이 많은 성직자가 완주군에 있다. ‘춤추는 신부님’으로도 널리 알려진 삼례성당 이사정라파엘 신부는 요즘 완주군을 상징하는 파크골프에 푹 빠졌다. 밝고 활달한 성격의 성직자인 그가 목자의 지팡이 대신 파크골프채를 든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4월, 성당 신자 한 명이 이사정 신부에게 파크골프채를 선물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막상 해보니 어르신이나 환자들이 하기 좋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체를 영해주고 기도하고 걱정해주는 것보다, 구체적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오던 신부에게 파크골프는 해답이 됐다.
“파크골프를 직접 해보니 몸에 무리도 없고 재미있으며,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을 알게 됐어요. 특히 다른 운동처럼 경쟁이 아닌, 함께 즐기기에 좋았습니다. 다만 초기에 접근이 어려워 신자들에게 파크골프채를 선물했더니 자연스럽게 입문으로 이어졌지요.”
그렇게 파크골프에 입문한 스테파노 형제는 위암 수술 후 힘겨운 투병 생활 중이었다. 이사정 신부의 선물로 스테파노 형제 부부는 파크골프를 시작했고, 얼굴에 희망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파크골프를 치고, 칼국수 내기 등을 했다. 폐암으로 전이돼 서울 병원으로 가기 전까지도 칼국수 내기는 계속됐다.
스테파노 형제는 서울 병원에 가서도 “신부님, 퇴원해서 파크골프할 생각만 해요. 신부님께 칼국수 사드려야 하는데요”라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이사정 신부는 스테파노 형제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스테파노 형제의 부인 엘리사벳 자매는 “스테파노가 하늘나라에서 파크골프를 하며 기다린다고 했어요. 아주 평안하게 떠났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사정 신부는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았어요. 슬퍼야 할 가족들이 모두 밝은 표정으로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 지난 1년간 파크골프채 100개를 선물한 일이 ‘참 잘한 일’이라는 보람이 들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목자가 지팡이로 양떼를 지키는 것처럼, 파크골프채를 들고 새벽 5시면 매일 파크골프장에 나가는 이사정 신부. 그런 그에게 20여 명의 신자들이 “안녕하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오늘 모자가 잘 어울리십니다”라며 인사를 건넨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최근 주교님 강론 말미에 교구 사제들에게 ‘목자의 지팡이가 있어야 하며, 그 지팡이로 양떼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씀이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파크골프를 치면서 저는 지팡이 대신 파크골프채로 양떼를 돌보는, 푸른 초원 위의 목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최근 평생교육원에서 파크골프를 배우고 있으며, 이를 함께 파크골프를 즐기는 신자들에게도 전해주고 있다.
1951년에 지어진 삼례성당은 구한말 천주교 박해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천주교 박해 당시 신자들은 완주군 고산과 동상 등지로 숨어들었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완주군 곳곳에 남아 있다. 그렇게 형성된 신앙인들이 박해가 풀리면서 이곳까지 확장돼 삼례성당이 세워졌다.
이사정 신부의 고향도 완주군 동상면이다.
“완주군에 파크골프가 더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완주군을 알리고 외부 인구 유입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전주 사람들은 완주가 먼 곳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교통도 좋고 없는 게 없는, 살기 좋은 곳입니다. 이런 곳을 알리는 데 파크골프 활성화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