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신문]정부는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을 위해 네 가지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진행 중이다. 감축 수준에 따라 향후 10년 간의 정책 방향과 산업 구조, 나아가 지역의 삶이 달라진다. 그러나 최근의 공청회는 여전히 남성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한 달간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여성 패널의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했다. 여성과 노동자, 농민,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 등 다양한 시민의 현실은 여전히 회의장 밖에 머물러 있다.
NDC는 단순한 수치 목표가 아니다. 어떤 가치와 방향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전환할지 결정하는 포괄적 계획이다. 기후정책은 에너지와 산업을 넘어 돌봄, 주거, 교통, 노동 등 일상 전반을 바꾸는 일이다. 그렇기에 누가, 어떤 관점으로 논의에 참여하는가가 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닥치지 않는다. 일례로 폭염과 홍수가 지나간 후, 가족을 돌보고 일상을 복구하는 일은 주로 여성의 몫이 된다. 재난은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 성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곧 기후 피해를 줄이는 길이며, 젠더 관점이 있어야 실효성 있는 기후정책을 만들 수 있다.
이는 비단 중앙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환경연대의 <DEI와 기후 거버넌스>연구에 따르면, 지역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광역 탄소중립위원회 중 부산·광주·울산·경기·강원 등은 특정 성별(남성)이 60%를 초과했다. 기초단위는 더 심각하다. 성별고려 원칙이 있음에도 대부분 성비 불균형이 큰 상태다. NDC는 중앙정부가 수립하지만, 실제 감축 정책이 실행되는 곳은 지역이다. 지역의 탄소중립 위원회와 기후 거버넌스가 성평등하지 않다면, 아무리 야심찬 국가 목표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9월 18일 녹색전환연구소와 여성환경연대, 플랜1.5가 주최한 ‘NDC에 젠더 관점 반영하기’ 워크숍에 40여명의 여성 활동가가 모였다. 지역에서 온 활동가들은 현장의 불균형을 생생히 들려주었다.
“기후 활동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들인데, 정책을 논의하는 회의 자리를 채우는 건 남성들이에요”, “NDC 목표가 높아지면 지역에도 감축정책이 구체화되지만, 낮으면 결국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돌아갑니다. NDC 수치는 지역의 정책 방향을 가르는 기준이에요”
이러한 발언들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기후 정책의 사각지대를 드러낸다. 젠더 관점을 통합한 기후 거버넌스는 단지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이들의 삶의 경험을 정책 설계에 반영함으로써, 각 지역의 현실에 맞는 해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것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이 스스로의 회복력을 키우는 첫걸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먼저, 지역 탄소중립위원회 구성 시 성별균형 원칙(한쪽 성별이 60%를 넘지 않도록 한다)을 권고가 아닌 의무 조항으로 강화해야 한다. 둘째, 여성 전문가 풀을 적극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 '적합한 여성이 없다'는 말은 노력의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셋째, 공무원과 거버넌스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젠더 관점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 지역의 탄소중립위원회는 누구로 구성돼 있는가? 여성과 청년, 농민, 노동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가? 이를 꾸준히 점검하고 보도하는 것이 지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자 기후위기에 맞서는 일이다. 회의장의 발언권을 성평등하게 나누는 일에서부터, 정책에 돌봄, 생활, 농촌의 이야기를 담는 일까지. 성평등한 기후 거버넌스는 우리 지역의 삶을 지키는 구체적인 안전장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