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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당신들의 천국 새마을회관

[완주신문]완주군의 새마을회관 건립 지원 조례 개정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개정안 관련조례 제3조는 ‘새마을회관 건립 및 관리 등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사업비’ 추가 계획을 명시했다. 이에 ‘완주군의회 모니터링 네트워크’ 측은 이의를 제기하며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네트워크에 따르면 완주군 내에 공익적 가치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수십 개가 있고, 이들 상당수는 창립 이래 만연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자원봉사센터에 대한 예산을 반이나 삭감하고 청소년자치문화복합센터 건립비 예산도 일부 삭감했다. 그런데 완주군은 유독 새마을회에게만 사업비 지원을 넘어서 회관 건립까지 지원하려한다. 이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둔화된 봉사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네트워크 관계자들은 비판한다.

 

그렇다면 왜 완주군은 새마을회관 건립에 열성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군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선의다. 심각한 노령화와 희박한 인구로 분포된 완주 지역을 세밀하게 살피려면 새마을회 같은 연대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완주군 대부분 마을에는 새마을부녀회가 있다. 이들은 군의 원활한 행정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가장 밀착한 형태로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그래서 군은 사업비와 운영비로 매년 1억원 이상의 금액을 지원하며 이들의 활동을 독려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참에 조례 개정을 해서라도 새마을회관까지 지어주고 싶은 것이다. 정황상 완주군의 새마을회관 건립 지원을 위한 조례 개정은 타당하지 않은가. 

 

4.19세대 작가 이청준은 자신의 작품 <당신들의 천국>에서 이러한 방침에 난색을 표한다. 주인공 이상욱은 다스리는 자로서 지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건물 건립에 앞장선다고 하지만, 이 시도가 군민들의 심중을 충분히 헤아린 결과인지 따져 묻는다. 

 

이 물음은 그가 낙후된 섬 소록도를 지상의 천국처럼 건설하고 싶어 하는 원장에게 던지는 말에서 드러난다.

 

“원장님께 희생과 선의(善意)의 동기가 있었더라도,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일은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지, 어느 한쪽의 ‘선의’나 의욕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보기에 다스리는 자로서 원장은 섬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적극적 소록도 개발을 운운하지만, 그곳의 개발은 어떻게든 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지역민의 자발적 참여의지를 끌어 내지 못하면 원장의 선의는 결국 주민에게 강제 노역이 되고 만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소록도 개발을 추진하더라도 그 선의가 주민의 선택권을 배제한다면, 섬은 주민들의 천국이 아니라 지배자인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완주군의 의도가 아무리 선할지라도, 군민들이 새마을회관 건립에 부정적이라면 이 사업을 재고(再考)해야 한다. 다스리는 자로서 완주군은 다스림을 받는 군민에 대한 선정으로 각종 사업계획을 세우지만 그 개발 동력은 결국 군민들이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20억원 상당의 군민 혈세로 건립한 건물이 완주군이 아니라 새마을회의 소유가 된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완주군에서 활동하는 새마을회 회원을 위한 건축물이니 완주군의 재산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건물의 처분권이 새마을회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새마을회관을 건립하려는 완주군의 선의가 오롯이 완주군민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완주군이 군민들과 합의 없이 새마을회관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면, 상욱의 말대로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할지라도 이곳은 ‘당신들의 천국’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민심을 거부하는 지역의 군민들은 세금내기가 아까울 것이고,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위해 활동해 온 수십 봉사 단체들의 의지는 무참히 꺾이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혈세를 들여 실익 없는 건물을 짓기보다, 실제 봉사활동 지원이나 공익 사업비를 지원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모 의원의 조언을 숙고해 보았으면 한다.